오피니언

[토요 산책] 길라임 훔치기


최근 종영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남자 주인공을 좋아한다는 '주원앓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스턴트우먼 길라임은 재벌2세 김주원과 영혼이 바뀌어 서로의 삶을 살게 되고, 스턴트우먼과 재벌2세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신데렐라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인어공주가 될 것인가를 두고 시청자들은 작가의 결론에 궁금해 하면서 여러 스포일러와 온갖 추측이 난무할 정도로 인기였다. 사이버 식별수단 유출 심각 이 드라마에서 길라임이 주원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백화점의 사장으로서 여러 업무를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길라임은 주원의 서명-드라마 속의 '사인'-을 하게 되는데, 하트(Heart) 모양을 그려서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한다. 왜 주원이 갑자기 사인을 바꿨을까. 주변 사람들이 놀란다. 사인은 내가 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니까. 드라마에서 김주원이 길라임이 되고 길라임이 김주원이 되는 것은 현실에서는 판타지이지만, 사이버 세상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김주원이 길라임의 동일성을 훔쳐서 길라임이 되는 것을 법에서는 동일성 절도(identity theft)라고 한다. 사이버 세상에서 내가 나라는 것을 입증하는 방법은 현실세계와 유사하다. 은행에 가서 아무리 '내가 나'라고 주장해도 신분증과 비밀번호 등을 입력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아닌 것이 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이버 세상에서는 현실세계와 달리 내가 나라고 외칠 방법이 없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나를 표상하는 숫자의 집합이 바로 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누군가를 표시하는 정보를 훔쳐서 그 누군가로, 길라임으로 행세할 수 있다. 사이버 세상에서의 동일성 인식방법은 나를 식별하는 수단이다. 스마트폰ㆍ스마트TV를 포함한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기기를 사용하는 사용자와 인터페이스를 필요로 하고 이 스마트기기에 의존할수록 이로 인한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절차가 중요해진다. 그런데 지금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개인식별정보들은 여러 개인정보 유출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이제는 지나치게 널리 퍼져 있다. 다른 사람이 나의 동일성을 훔쳐서 나로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금융거래를 하는데 동일성 정보를 절취당하면 핸드백을 절취당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물건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절취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단순히 개인적으로 조심하고, 만일 문제가 생기면 그 개인정보를 잘못 관리했다고 당사자만 비난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인도 자신의 정보를 지키고 자신의 동일성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고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권익 보호 힘쓸 때 예를 들어 인터넷 사이트 가입의 경우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필수적인 정보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제재를 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정보에 대한 특별한 필요성 입증은 이를 요구하는 자가 하도록 해야 한다. 개인식별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제한하고 그 사용도 규제해야 한다. 비 오는 날 영혼이 바뀐 길라임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현실에서 만일 길라임이 자신의 동일성을 훔쳐간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사이버 세상에서 길을 잃고 내가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되는 길라임은 없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