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러에 대한 불신이 매우 일반화된 시점에 살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달러화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에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시장 중개인들은 이미 미국 달러를 버리고 엔ㆍ유로 등 다른 통화나 원자재에 투자해 가치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보다 국가 부채가 상당히 많으며 미국의 국가 부채율은 유로존보다 아주 높다. 미국의 진짜 문제는 민간 경제주체들의 부채에 있다. 민간 부채는 국채와 국가가 보증을 선 부채 때문에 상환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 미국의 민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75%에 가깝고 국채는 2010년 GDP의 90% 벽을 넘었으며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주정부와 시정부의 부채를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여러 주정부들, 특히 캘리포니아는 준(準)파산 상태다. 달러에 대한 애착 급속도로 사라져 중앙은행의 재량적 조치, 금융중개인들의 일시적 이익 실현, 미국 은행들의 재도산 방지를 위한 대응 등으로 이 같은 현실이 잠시 가려질 수 있지만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다. 유로는 자체 위기 때문에 달러 가치 급락에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 재무부 채권을 보유하는 것이 일시적 피난처가 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단기채권(3개월)에 집중될 것이다. 달러의 위기는 '다극화된 세계의 탄생'의 다른 모습이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적 차원에서 헤게모니를 뒷받침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현재 어떤 나라도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지만 미국은 세계적 차원에서 통화와 무역의 중심축으로서의 지위를 지킬 힘도 수단도 없다. 미국이 회복하고 있다는 지표들은 위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잇단 양적 완화 프로그램 추진이 이를 증명한다. 어떤 시장 중개인도 달러의 위기에 따른 자본 상실 때문에 미국 돈의 즉각적인 위기로부터 이득을 보지 못하므로 이미 투자자산 분산에 뛰어들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의구심이 배어들기 시작하면 달러에 대한 애착은 예상치 않은 빠른 속도로 사라질 것이다. 유로가 힘을 잃고 달러 가치가 급상승하는 짧은 기간 후에 투기의 파고는 정면으로 미국의 화폐를 타격할 것이다. 투자자산 분산 과정의 가속화는 달러 위기를 더욱 재촉할 것이며 투자자산 분산 과정이 어떤 한계치에 다다르면 아마도 1~2년 안에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반면 단기적으로든 중기적으로든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새 국제통화 질서라는 해법이 나오긴 힘들다. 유로의 위기는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2009년 9월이 아니라 독일과 다른 회원국 간의 국채금리 차이가 확대되기 시작한 2007년 7월부터 시작됐다. 유로는 독일과 프랑스ㆍ이탈리아ㆍ스페인 등 다른 유로존 국가들 간의 타협에 기초를 두고 있다. 독일은 유로존 출범으로 다른 나라의 경쟁적 평가절하에 대한 우려 없이 그 나라들의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으며, 다른 나라들은 그 대가로 자국의 이자율을 독일의 이자율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 유로존, 단일통화 원칙 과감히 포기를 유로존의 변방국들은 2007년까지 아주 낮은 이자율 혜택을 누렸지만 스페인ㆍ포르투갈의 부동산 위기, 아일랜드 은행의 과다한 부채비율을 초래했다. 이자율 격차가 2008년 8월을 기점으로 급격히 확대되자 유로존 변방국들은 회원국 자격에 기대어 채무변제에 필요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없게 됐다. 유로존은 단일통화 원칙을 포기하고 유로를 국가별 화폐와 상호 보완적인 공동통화로 탈바꿈시켜야만 국가간의 상이한 구조적 인플레이션율에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희생을 치러서라도 현 상태를 지키는 방안을 고집한다면 회원국 간의 경제적 이질성 심화로 단일통화가 갖는 구조적 결함을 치유할 수 없고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세계 경제가 직면할 불안정은 앞으로 어떤 대응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