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재벌개혁을 언급한 이후 검찰·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위원회 등 권력기관들이 일제히 나서서 진군나팔을 울려대고 있다.이런 가운데 金대통령은 3주만인 지난 4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재벌개혁이 이렇게 어려운 줄 미처 몰랐으며 내평생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金대통령이 「내평생…」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재벌개혁에 대한 저항과 마찰이 金대통령이 평생 겪어온 그 어떤 정치적 고초보다 더욱 대단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재벌개혁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의 구도는 대개 이렇다.
재벌개혁을 외치는 정권중심부의 싱크탱크 집단이 대통령의 결심을 이끌어 냈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재벌오너와 그 추종자들은 무리한 개혁의 부작용을 설파하며 저항하고 있다. 저항이 커지자 검찰 국세청 금감위 등 재벌개혁의 집행기관들이 전방위로 그들을 압박한다. 그러나 대우처리와 은행 매각 등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관료들이 책임지기를 피하며 문제를 키우고 있다. 여권 일부 인사들은 개혁의 속도조절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론들은 문제점만 부각시키며 즐기는 태도다.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굵직한 사안만도 삼성그룹 회장가 등 재산가 세무검증,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대우그룹 워크아웃 작업, 대한생명 처리문제, 5대그룹 부당내부거래 조사 등이 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칼 포퍼에 의하면 「열린 사회」는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치유하는 방안이 사회 내부 시스템에 내재된 사회이며 「닫힌 사회」는 그 길을 막아놓고 일방통행을 강요하는 사회다. 포퍼가 말한 「그 적들」은 전체주의였다.
우리가 경제구조조정과 재벌개혁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린 사회라면 「그 적들」은 누구인가.
재벌 그 자체는 우리사회의 암적 문제요소일 수는 있으나 우리사회의 「그 적들」은 아니다.
오히려 「한탕주의 충성경쟁」을 벌이는 권력기관, 경제구조조정 과정에서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면피 우선주의」로 매진하는 관료집단들이 혹시 우리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막는 적들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6공시절 정주영(鄭周永)일가에서 1,252억원의 세금을 물린 국세청이 소송에서 완패해 이자까지 물어준 일과 YS정권시절 검찰이 잡아넣은 사람중 상당수가 지금은 의원 배지를 달고 있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탕주의 충성경쟁이나 위기가 현실화 되어야만 대책마련에 나서는 면피주의로는 이 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 적들」을 어찌 할 것인가.
증권부 禹源河차장WHW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