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車산업 규제, 국내 대학에 하버드 수준 요구하는 격



통상임금 확대·환경규제 등 단계별 과정 생략한 채 밀어붙이기

자국산업 고려없는 규제 무의미… 정책 뒷받침돼야 경쟁력 높아져


내년 4월 개최 서울모터쇼, 車·IT 융합통해 일류 모터쇼 만들것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세계 대학 랭킹에서 중하위권인 국내 명문대 수준인데 정부 정책은 세계 최고인 하버드 수준의 규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단계별로 차근차근 나아가는 과정이 생략된 느낌입니다. 아무리 약이 좋아도 과잉처방으로 쓰러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김용근(사진)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최근 서울 서초구의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아직은 세계 최고 레벨이 아닌 만큼 정부 정책이 뒷받침돼야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며 이같이 힘주어 말했다. 김 회장은 자동차 업계를 옥죄고 있는 노동 이슈와 환경 규제 등에 관해 특히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통상임금과 사내하도급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정부와 사법부를 향한 거침 없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김 회장은 우선 "노사관계의 주권을 상실했다"는 말로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이슈가 법원으로 몰리면서 중재를 위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며 "정부를 믿고 투자했던 외국인 투자 기업에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 이후 빚어지고 있는 혼란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988년 제정된 고용노동부의 예규는 '1개월의 간격을 넘어 지급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예규는 법률이나 시행령과 달리 강제적인 구속력이 없지만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국내 기업 노사도 20년 넘게 정부의 행정해석을 근거로 통상임금 범위를 산정해왔다. 하지만 기존의 관행을 일거에 뒤집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산업 현장의 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통상임금 확대 등의 이유로 한국GM의 인건비는 지난 2009년 이후 5년 새 50%나 늘었습니다. 사법부가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법률에 준하는 수준으로 해석하지 않고 단편적인 형식논리로 이를 뒤집어버리면 현장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무기력한 행정부는 리더십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그의 비판은 사내하도급 활용에 제동을 건 최근 법원 판결에까지 이어졌다. 김 회장은 "일의 완성을 위한 좁은 의미의 의사소통까지 '지휘명령 관계'로 파악한 법원 판결은 현실과 동떨어진 해석"이라며 "사법부가 실체적 정의를 바로잡아야 자동차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내하도급과 파견은 모두 간접고용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지휘감독권이 원청회사에 있다면 해당 근로자는 파견이며 원청에서 일하지만 하청업체의 지시를 따른다면 도급계약을 맺은 것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우 대다수 선진국과 달리 파견이 가능한 업종이 32개에 불과하며 제조업은 무조건 파견이 금지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9월 제조업 회사인 현대차가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파견 근로자처럼 활용했기 때문에 현대차의 사내하청 활용은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고용 유연성을 둘러싼 재계와 노동계의 갈등이 다시 부각됐다.

김 회장은 "파편적인 노동 이슈가 전체에 너무나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라며 "법조계가 제대로 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전체와 부분의 역학관계를 감안하면서 판결을 내려달라"고 당부했다.

대화가 연비규제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자 김 회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엇보다 김 회장은 어떻게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맞춤형 정책을 강구하는 해외 선진국과 달리 우리 산업의 손익은 괘념치 않는 듯한 정부의 태도에 섭섭함이 쌓인 듯했다.

그는 "프랑스가 '보너스말러스(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자국 업체의 핵심 라인업이 대부분 소형차들이기 때문"이라며 "디젤이 강세인 유럽연합(EU)이 강력한 연비 기준을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역설했다. 김 회장은 이어 "자국 산업의 강점을 부각시키면서 수입 브랜드에 대한 견제용으로 정책을 펴는 것이 정석인데 우리는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니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초 국내에서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내년 1월 도입 예정이었으나 업계의 끈질긴 반대와 설득으로 2020년 말까지 가까스로 시행이 연기됐다.

저탄소차 협력금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를 사는 사람에게 부담금을 매겨 이를 재원으로 연료소비가 적은 차를 사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제도의 취지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소비 패턴을 작고 연비 좋은 차 위주로 재편해 에너지 소비 절감을 유도한다는 것이지만 이 제도가 국내에 도입될 경우 유럽의 디젤차와 일본 하이브리드차가 가장 큰 수혜를 입는 반면 국산차 업체들은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2020년까지 자동차 평균 온실가스 배출허용치와 연비 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기로 한 정부의 방침 역시 업계에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9월 행정예고를 통해 차기(2016∼2020년) 온실가스 배출허용치와 연비 기준을 각각 97g/㎞, 24.3㎞/ℓ로 변경한다고 고시했다. 온실가스 배출허용치의 경우 유럽의 91g/㎞(2021년)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일본의 100g/㎞(2020년), 미국의 113g/㎞(2020년)보다는 훨씬 엄격한 수준이다.

김 회장은 "규제를 가할 때 2~3년의 시간을 두고 업계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인프라도 충분히 점검하는 외국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며 "공공성과 상업성의 균형 없이 생산자에게만 부담이 되는 규제는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중요한 것은 환경과 산업 정책의 조화입니다. 환경은 선(善)으로, 기업은 악(惡)으로 규정 짓는 현재의 분위기가 자동차 업계의 환경 이슈를 이념적인 문제로 비화시키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과 연비에 대한 정부의 중장기 규제 방안은 국내는 물론 수입차 업체들로부터도 강한 반발을 부르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토론하면서 의견을 모아나가는 과정이 절실합니다."

다소 무겁고 어두웠던 분위기는 화제가 서울모터쇼 얘기로 흐르면서 반전됐다. 서울모터쇼는 내년 4월 경기도 일산의 킨텍스에서 열릴 예정이며 김 회장은 모터쇼의 조직위원장으로 참여하게 된다.


김 회장은 "현대·기아차가 세계 5대 메이커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모터쇼는 내수시장의 한계와 이웃인 중국 모터쇼의 영향 때문에 세계적인 행사로 우뚝 서지 못했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어느덧 10회째를 맞는 내년 행사에서 나름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구축한다면 글로벌 일류 모터쇼로의 도약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 김 회장의 판단이다.

관련기사



그는 "월드프리미어나 아시아프리미어의 차종 수를 늘릴 수 있도록 여러 업체들과 다각도로 협의 중"이라며 "한국이 특히 강점인 정보기술(IT) 분야와 자동차의 융합도 시도해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김 회장은 2년 임기인 세계자동차산업연합회(OICA) 수장으로서의 포부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10월 서울에서 열린 총회를 통해 OICA 회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지난 1919년 설립된 OICA는 전 세계 38개 자동차 단체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으며 한국·미국·일본·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중국 등 8개국이 상임이사국이다. 한국인이 OICA 회장으로 선임된 것은 김 회장이 처음이다.

그는 "지금까지 OICA는 유럽이 중심이 된 협의체였지만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자동차 생산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게 된 이상 아시아 국가의 달라진 위상을 간과할 수 없다"며 "서울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의 모터쇼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김 회장은 아울러 "OICA 회원국 간의 정보 공유를 활성화하고 각국의 정책 비교 연구를 통해 환경·안전 기준의 국제적인 조화를 이끌어내는 작업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He is…

△1956년 전남 순천 △1976년 서울대 경제학과 △1980년 행정고시 23회 △1995년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 국제기업담당관 △2003년 산업자원부 지역산업균형발전기획관(국장) △2007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본부장(차관보) △2013~2017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2014~2016년 세계자동차산업연합회 회장



28년 공직 산업정책통… '저탄소차협력금 유보' 결정적 역할

■ 김용근 회장은

나윤석 기자

'28년 관료 생활의 연륜이 묻어나는 산업 정책통.'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에 대한 업계의 평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발을 들인 김 회장은 해운항만청과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 등 관직에서만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협회에 오기 전에는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국내 산업의 부흥을 위한 최전선에서 한시도 벗어난 적이 없다.

김 회장 이외에 관료 출신으로 협회장을 역임한 사례는 전임 수장인 권영수 회장이 유일하다. 이전까지는 업계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회장과 관료 출신의 상근부회장 체제로 운영됐다. 김 회장은 "협회에 와 보니 자동차 업계의 이슈들을 하나로 모으면 '정책종합세트'나 마찬가지더라"며 "오랜 관직 경험으로 훈련된 정책 감각이 아니었으면 여러 관계부처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충을 드러냈다.

업계에서 김 회장을 저탄소차 협력금제 유보의 주역으로 지목하는 것도 이 같은 과거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완성차 회사는 물론 미국으로부터도 통상 압력이 들어오는 가운데 김 회장은 직접 발로 뛰며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여러 부처 담당자들을 만났다.

그는 "장기적으로 환경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제도"라면서도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지금 당장 시행하면 우리 업계의 경쟁력이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근거로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 같은 김 회장을 비롯한 협회의 노력에 지난 9월 정부는 2020년 말까지 제도 시행을 유보한다는 결정으로 화답했다.

김 회장은 책을 4권이나 펴낸 저술가이기도 하다. 특히 2012년과 지난해에 발표한 '인문학자 과학기술을 탐하다' '기술은 예술이다' 등의 저서는 지식과 감성의 융합이야말로 새로운 세기의 경쟁력을 창출하는 밑거름이라고 믿는 그의 소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내년 서울모터쇼를 단순한 자동차 축제가 아니라 예술적인 품격을 갖춘 행사로 기획 중인 것도 이 같은 평소 철학과 지론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공직 시절 3년 동안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근무한 덕분에 영어 실력도 유창하다. 기본적인 회화는 물론 전문적인 기술 용어가 난무하는 정책 관련 대화도 무리 없이 소화 가능하다.

김 회장은 "빠지지 않는 영어 실력도 세계자동차산업연합회(OICA) 회장으로 선출되는 데 한몫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의사소통 능력과 함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굵직굵직한 공직 경험까지 살려 OICA 회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담=이용택 산업부장(부국장) ytlee@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