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4월 23일] 멈춰 선 '마이바흐'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지하 주차장. 이곳에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대의 차량이 거의 운행을 멈춘 채 자리 잡고 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애마’로 널리 알려진 럭셔리 카 ‘마이바흐’다. 마이바흐는 이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퇴임한 뒤 삼성전자 소유로 돼 있는 차량을 회사에 반납하면서 놓이게 됐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마이바흐는 차가 아닌 이건희 회장으로 대변되는 삼성그룹 리더십의 상징이었다”며 “주차 공간의 한켠을 차지한 채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고 말한다. 오너경영에서 집단경영 형태로 변신하는 등 삼성이 경영혁신을 단행한 지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외부 평가를 종합해 보면 변화의 와중 속에서도 갑자기 불어 닥친 글로벌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는 한 단면만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 크게는 재계의 수장으로 삼성의 리더십, 작게는 삼성의 10년 후를 결정할 리더십에 대한 공백 우려의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이 재계 맏형으로 한국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회사의 장기적 비전을 선포하며 이슈를 주도하던 모습은 현재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맏형으로서의 삼성의 역할이 위협 받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는 목소리마저 더욱 커지고 있다. 삼성그룹 경영진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지만 5~1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 관점의 의사 결정이 현재 시스템에서 여의치 않다는 것은 외부는 물론 삼성 사장단 내부에서도 공감하는 문제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특정 시점에 도약하도록 이끄는 힘과 리더십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당면한 과제이자 고민거리”라고 덧붙였다. 만약 삼성그룹이 새로운 리더십 시스템을 하루빨리 갖추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소니가 과거의 소니가 아니듯 10년 후의 삼성은 현재의 삼성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지하 주차장에 놓인 마이바흐는 현재 삼성이 처한 현실과 앞으로의 과제를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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