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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靑만찬 늦은 국제그룹 미운털 박혀 결국 공중분해
대통령 격려 받은 현대는 정회장 생전 부동의 1위
지도자가 기업인 받쳐줄 때 기업 성장·경제도약도 가능
절대권력자인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졸다가 오히려 격려를 받은 정주영 현대건설 사장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산 정주영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재임하던 지난 1977년부터 1987년까지 11년간 전경련 국제담당 상무로 일하며 정 회장의 통역을 맡았던 박정웅 메이텍인터내셔널 대표는 최근 정주영의 일대기를 담은 '이봐, 해봤어?'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남겼다.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정주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 담긴 아산 정주영의 술회.
"박 대통령이라는 분이 그 시절 얼마나 대단하고 위엄있는 분이야. 그런데 그런 어른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다 깜빡 졸았던 거야. 아마 내가 태어나서 엿새 동안 양말을 못 갈아 신었던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야. 그 정도로 현장에서 허구한 날 날밤을 새우던 때였으니까. 내가 작업화를 벗어놓고 자본 기억이 별로 없어.…그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께서 호출을 하셔서 불려갔다가 난처한 일이 일어났던 것이지."
아산 정주영은 이를 두고두고 고마워하면서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써먹었다. 공사현장을 둘러보던 중 작업하다 말고 현장에 앉아서 조는 직원들을 보면 얼마간 자도록 놔두고 다른 곳을 보고 와서는 깨웠다. 정 회장이 누구던가. '현장 호랑이'로 통했다. 회장에게 졸음을 들켜 사색이 된 직원들이게 정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미안하구먼.'
아산 정주영이 생전에 최측근에게 들려준 일화는 단순한 이야깃거리에 머물지 않는다. 최소한 두 가지 교훈이 이 일화에 녹아 있다. 첫째, 아산 정주영의 습득 및 재창조 능력이다. 무엇인가를 습득하면 바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재창조하는 정 회장의 개인 능력은 초기의 숱한 난공사와 적자사업을 딛고 고속성장했던 현대건설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정 회장은 자신 앞에서 졸았던 직원들이 '놀라긴 했어도 박 대통령 앞의 자신처럼 감격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두 번째는 정치지도자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한때 재계 랭킹 7위에 올랐던 국제그룹이 해체되는 운명은 '지존 앞에서 졸고도 따듯하게 격려 받았던 아산 정주영'의 사례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국제그룹을 일으켜세운 고 양정모 회장은 1988년 이런 요지의 증언으로 충격을 안겨줬다. "폭설로 청와대 만찬에 한참 늦게 도착했다. 당시 대통령이 크게 분노했고 이후 은행들의 태도가 달라져 국제그룹은 결국은 1985년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양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법은 양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5공화국이 끝난 후 양 회장이 국제그룹 해체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1993년 7월 헌법재판소는 "전두환 정부가 국제그룹 해체를 지시한 것은 기업 활동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했다"며 재판관 8인의 다수의견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똑같이 권위적이었던 3공과 5공이었지만 기업인을 대하는 태도는 명확하게 엇갈렸다. 해당 기업의 운명도 그에 따라 극과 극을 걸었다. 현대그룹은 아산 정주영 생전에는 부동의 1위를 달린 반면 국제그룹은 흔적조차 안 남았다. 통치권자의 리더십은 이토록 경제와 기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인을 대하며 보여준 태도와 리더십이 남아 있을까.
현정택 정책조정수석은 청와대에 입성하기 직전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로서 서울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희생을 바탕으로 한 기업가정신과 국가 리더십의 조화 없이는 한국 경제의 재도약도 요원하다"고 말했다. 기업가정신으로 충만한 제2, 제3의 정주영은 국가 리더십이 받쳐줄 때만 나타날 수도 있고 경제도 다시 뛸 수 있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김영필·나윤석(산업부)·김나영(편집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