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을 주제로 한 소설은 아마 객주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역사소설의 효시로 박종화ㆍ이병주 선생 등을 들 수 있지만 주로 왕조ㆍ궁중사였죠. 서민들도 나라를 일으켜 세울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계층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역사소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장편 대하소설 ‘객주’ 10권 완간을 기념해 2일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소설가 김주영(74ㆍ사진)은 “30년만의 완간이니 해서 너무 과대 포장되고 독자들이 현혹되는 모양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겸손해했다.
작가는 이번 완간에 대한 소감에 앞서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기업가 마쓰시타 오노스케 회장 얘기를 꺼냈다. 마쓰시타 회장은 자신의 성공비결 세 가지로 가난과 병약, 낮은 학력을 들었다. 가난해서 고생 하다보니 세상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병약하게 태어나 항상 건강에 유의했고, 초등학교도 못나와 항상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꼭 내 인생을 얘기하는 것 같아 마음에 남았습니다. 가난했고 병약했고 많이 배우지 못했던 내 인생을 바탕으로, 그간 출간된 소설 대부분이 밑바닥 인생을 담은 것 같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고, 누구와 만나 어떤 일을 했는지. 애환을 ‘객주’ 열 권에 줄기차게 써놓았습니다.”
작가의 대표작인 ‘객주’는 19세기 후반 조선에서 활동한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당대 시대상을 담아냈다. 정의감ㆍ의협심 강한 보부상 천봉삼을 주인공으로 경상도 일대에서 근대 상업자본이 형성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지난 1979~1984년 서울신문에 연재돼 총 9권으로 출간됐고, 30여년이 지난 올해 5개월여 연재를 거쳐 10권으로 완간됐다.
“사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국사 공부를 따로 한 것도 아닌 내가 한국 서민사를 실수 없이 쓰려다 보니 진이 다 빠졌어요. 6년여 연재 끝에 1984년 중간에 끝냈지만 계속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4년 전 경북 울진에서 봉화로 넘어가는 보부상 길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10권을 쓸 마음을 먹었죠.”
그는 집필을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일로 봉화의 산골마을에 남아있는 보부상 정한조ㆍ권재만의 송덕비를 들었다. “봉화에 가면 보부상들이 가명으로 땅을 사 가난한 이들에게 농사를 짓게 했던 마을이 남아있고, 그러한 보부상 정한조ㆍ권재만을 기리는 송덕비도 있습니다. 지금도 11월이면 그 땅의 소출을 모아 보부상들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그들도 저마다 가족과 친척들이 있었지만 김안동ㆍ박청송 등 성에 출신지를 붙인 가명으로 땅을 샀습니다. 사후에 친척들이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한 거죠. 지금 한 재벌기업이 형제간 상속싸움을 하고 있는데, 당시 이미 보부상들은 그런 부작용을 막으려고 현명한 조처를 한 거에요.”
작가 개인적으로 ‘객주’ 완간과 더불어 좋은 일이 겹쳤다. 지난해 펴낸 장편소설 ‘잘가요 엄마’가 올해 새로 제정된 남해시의 ‘김만중 문학상’ 첫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 하지만 그는 젊은 작가들에게 가야할 상이 새삼스레 돌아왔다며 겸연쩍어 했다. “김만중의 ‘구운몽’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소설이었는데, ‘잘가요 엄마’가 그 취지에 맞다며 연락이 왔어요. 올해는 좋은 일만 생겨서 쑥스럽고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