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 세상] 평범한 저널리스트, 기억력의 달인 되다

■ 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 (조슈아 포어 지음, 이순 펴냄)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대연회장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참사가 일어났다. 바로 몇 분 전, 이곳에서는 키오스의 시인 시모니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시를 읊고 있었다. 만나려는 사람이 찾아와 그가 밖으로 나가던 순간 지붕이 내려앉은 것이다. 구조대와 피해자 가족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바로 이때 시모니데스가 붕괴사고 직전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먼저 산산조각난 대리석 파편을 짜 맞춰 기둥을 올리고 벽면을 다시 세워 원래 모양대로 해 놓았다. 그리고 연회장 탁자에 둘러앉았던 귀족과 동료 시인들의 자리를 되짚었다. 사람들은 그의 기억을 근거로 사상자의 위치를 추적해냈다. 고대 그리스의 '기억술'은 이 때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영화 속 초능력자의 이야기 같은 '기억술'이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평범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전미(全美) 메모리 챔피언십 취재를 계기로 배운 기억술을 하루 1시간씩 1년간 훈련한 결과 이듬해 대회에서 '기억력의 달인'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책은 그 기억력 향상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저자의 훈련을 도와준 사람은 24세의 영국 청년 에드 쿡이다.'실낙원'을 통째로 외우고 252자리 숫자를 간단히 외우는 그가 시모니데스가 발견했다는 고대 그리스의 기억술을 전수해 준다. 핵심은 '기억의 궁전'이라는 방법. 가상으로 건물을 지어 그 곳에 기억하고자 하는 대상을 시각 이미지로 만들어 채워 넣는 방식이다. 이 때 이미지는 재미있고 외설스럽고 색다를수록 기억하기가 더 쉽다. 장보기 목록을 외우려 할 경우 고향집처럼 친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치즈'가 뒤범벅된 탕 안에서 클라우디아 쉬퍼가 목욕을 하고 있고 거실 피아노 위에 향긋한 '훈제 연어'가 올려져 있는 식의 이미지를 그려본다면 오랫동안 많은 목록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기억의 궁전'이라 해서 진짜 궁전이나 건물일 필요는 없다. 철로를 따라 늘어선 역사(驛舍)이거나 천문학의 12궁, 신화에 나오는 동물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한 장소가 다음 장소와 잇닿아 있어야 하며 눈에 선할 만큼 친숙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기억해야 할 단어 이미지를 만들어 저장한 후 아침 저녁으로 '궁전'을 거닐어 보고 또 일주일 뒤에 거니는 식으로 저장된 내용을 각인해보면 된다. 얻는 것은 기억력 향상뿐만이 아니다. 기억할 정보를 이미지로 만드는 '기억술 훈련'은 창조성 훈련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기억 훈련을 통해 저자는 학습과 기억, 창조성이 기본적으로 같은 과정임을 깨달았다. 고대와 중세까지 기억력이 학문과 예술의 원동력으로 간주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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