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과 일본 대지진 및 쓰나미에 따른 타격 등으로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경기 회복기의 일시적인 성장세 둔화를 의미하는 '소프트 패치'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유로존의 재정위기와 국가 채무한도 증액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 등 대내외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하반기에도 잠재 성장률 3% 미만의 저성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지만 대체로 성장률이 상반기에는 낮고 하반기에는 높은 '상저 하고'의 곡선을 그릴 것으로 월가는 예상하고 있다. 요즘 발표되는 미 경제지표는 온통 회색이다. 26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지난 1ㆍ4분기 국내 총생산(GDP) 성장률이 연율 기준 1.8%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한 달 전 발표된 예비치와 같은 수준. 당초 2.1 %로 상향 조정될 것으로 기대됐다. 지난해 4ㆍ4분기 성장률은 3.1%였다. 이날 발표된 지난주 신규실업수당 청구자 수도 42만4,000명으로 전주에 비해 1만명 증가하며 7주 연속 40만명을 웃돌았다. 다음주 발표되는 5월 고용통계에서도 비농업부문의 고용 증가폭이 20만명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호조세를 보여온 제조업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최근 발표된 4월 내구재주문은 전월 대비 3.6% 감소했다. 예상치인 2.2%를 훨씬 웃돈 것. 다음주 발표되는 대표적인 제조업지표인 공급관리자협회(ISM)의 제조업지수도 부진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둔화되고 있다. 개인소비 1분기 증가율은 2.2%로 2.7%였던 잠정치를 크게 밑돌았다. 지난해 4ㆍ4분기에는 증가율이 4%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로버트 다이 PNC파이낸셜서비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나올 지표도 기대하기 힘들다"며 "올 상반기는 소프트 패치로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상승과 일본 지진 및 쓰나미에 따른 서플라이체인(supply chain) 훼손이 올해 초 장밋빛 전망 일색이던 미국 경제가 이처럼 맥을 못 추게 만든 요인으로 지목된다. 내구재 주문만 하더라도 항목별로 볼 때 자동차 등 운송장비의 주문과 출하가 각각 9.5%, 3.0% 감소했다. 이는 일본 지진으로 마이크로 컨트롤러 등 자동차 부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빚어진 미국 공장의 차량생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앤드루 틸튼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지진으로 인한 서플라이 체인 문제는 0.5% 정도 2ㆍ4분기 성장률을 잠식했고 나머지는 고유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뿐 아니라 소비심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악재로 작용한다. 투자은행(IB)은 이러한 점을 감안해 2ㆍ4분기에도 성장률이 당초 기대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3.5%에서 3.0%로, 도이체방크는 3.7%에서 3.2%로 2ㆍ4기 성장률 예상치를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전망이다. 국제 유가가 하향 안정 추세를 보이고 일본의 지진 영향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돼 경기회복세가 다시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미셸 지라드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하반기에는) 유가하락으로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공장들은 생산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가동률을 높일 것"이라며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적완화가 오는 6월 말 종료되더라도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FRB가 적어도 내년 초까지는 긴축에 돌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용어 설명 소프트 패치(soft patch)=지난 2002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 의회에서 경제상황을 설명하면서 골프장에서 잔디상태가 나쁜 지역을 의미하는 '라지 패치(large patch) '를 빗대어 미국경제가 라지 패치에 빠진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처음 사용했다. 이후 경기 회복 국면에서 일시적인 성장세 둔화를 의미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