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2월 20일] '지급결제참여' 본질을 알자

이태열(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보험산업의 소액지급결제 시스템 참여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시행된 자본시장법 도입과정에서 온통 지급결제에 대한 논의만 무성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이번 보험업법 개정과정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재연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란은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정확히 이뤄지지 않으면 본말이 전도되기 십상이다. 특히 지급결제와 같이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논란은 더욱 그렇다. 결제리스크 사실상 문제 없어
따라서 우선 지급결제의 개념부터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지급결제란 채권ㆍ채무관계를 화폐적 가치이전을 통해 청산해주는 행위다. 따라서 원금반환을 조건으로 고객의 자금을 보관하고 운용하는 예금업무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지만 지급결제 업무가 주로 은행의 예금에 부수돼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며 그 결과 은행공동망은 국가 금융거래의 핵심적인 시스템이 됐다. 다시 말하면 은행공동망은 사사로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설망이기보다 도로망ㆍ철도망ㆍ전력망 이상의 공공성을 갖춘 주요 국가 기간망이 된 것이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지급결제 업무를 포함하는 종합금융 서비스 능력에 크게 좌우되는 상황이고 지급결제시장에도 독점을 배제한 공정경쟁 도입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캐나다ㆍ유럽연합(EU) 등이 비은행 금융기관의 지급결제 시스템 참여를 허용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지난 2001년 서민금융기관에 이어 올해 금융투자업이 소액지급결제 시스템에 참여했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다른 금융업권이 은행공동망에 참여하는 게 달갑지 않겠지만 국가 기간망 활용에 있어 명확한 이유 없이 특정 산업만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보험산업의 지급결제 시스템 참여가 은행공동망에 리스크를 초래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결제 리스크를 논의하려면 개념부터 정확히 해야 할 것이다. 결제 리스크는 기본적으로 지급지시를 실시간으로 처리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 결제하기 때문에 초래된다. 따라서 관련 금융기관의 파산 및 유동성 부족 등이 발생해도 결제가 무난히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면 결제 리스크에는 사실상 문제가 없다. 지급결제용 유동성을 전액 은행에 예탁하는 우리나라 보험산업 시스템은 상호저축은행 등 서민금융기관이나 금융투자업보다도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보험회사의 갑작스러운 파산에도 결제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최근 금융위기로 위기를 맞은 보험회사들의 사례를 결제 리스크와 연관 지어 거론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금융기관 건전성의 문제이지 결제 리스크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기간망사용, 보험 차별 말아야
일부에서 거론하는 금산분리 문제는 더더욱 무관한 논쟁이다. 금융회사와 계열사 간의 부당한 거래 가능성과 고객을 위한 자금이체 서비스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다. 게다가 산업자본 계열 금융회사의 지급결제 시스템 참여가 금산분리를 허무는 것이라면 이미 증권회사들에 의해 금산분리는 와해된 것이며 더 이상 논란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보험회사가 현재 상황에서도 지급 서비스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일견 맞는 말이다. 사업 모형에 많은 제약이 따르겠지만 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와 제휴할 수도 있으며 민간 전자금융업자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은행공동망에 참여하는 방안이 서비스의 범위와 효율성에 있어 가장 뛰어난 대안이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보험회사가 종합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최적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함에 있어 고객의 자산관리를 업무로 하는 다른 금융업권에 비해 선택의 폭에서 차별을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보험산업만이 지급결제 시스템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려면 보다 명백하고 확고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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