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美·유럽 보유 특허 곧 만료… 헬스케어 패러다임 급변<br>바이오와 케미컬 결합, 새 기회 반드시 잡을것<br>CMO 수출대금 원화결제… '윈윈전략'으로 설득해 관철<br>인재관리 비법은 '존중·사랑', 해고도 없고 노조도 없어


"앞으로 헬스케어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셀트리온은 이 같은 변화를 선도하고 미국과 유럽 등 바이오 선진국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주역이 될 것입니다." 국내 바이오 산업의 대표주자인 셀트리온의 서정진(53ㆍ사진) 회장은 "창업 이후 지난 10년은 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다"며 다가올 새로운 10년을 착실하게 준비해 한국이 바이오 산업 강국으로 부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또 시가총액 2조원의 바이오 대기업으로 급성장한 셀트리온의 역할론도 강조했다. 서 회장은 "바이오펀드 운영과 공동 연구개발 등 셀트리온이 바이오벤처를 활성화하는 앵커(anchor) 역할을 하겠다"며 "업계를 이끄는 앵커 기업이 있으면 많은 중소업체들과의 시너지가 발생하고 협업기업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바이오밸리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셀트리온이 그동안 바이오시밀러 분야를 선도해온 데 이어 제약회사 인수, 종합 독감항체 치료제 개발 등 바이오 산업에서 눈에 띄게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남들은 공격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셀트리온은 무척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회사입니다. 셀트리온은 과거에 세웠던 계획 가운데 이루지 못한 것이 없는데 100% 성공률이란 곧 그만큼 신중을 기해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봅니다. 기획단계에서는 누구보다도 보수적이지만 일단 기획과 검증을 마치면 그 다음부터는 어떤 어려움이든 정면 돌파해 추진해왔습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회색지대(grey area)의 경우 최고경영자(CEO)의 판단에 따라 승부수를 던질 때는 과감히 승부수를 던져 왔습니다. -10년 전 자동차 업계에 몸담았다가 바이오 사업에 뛰어든 배경은 무엇입니까. ▦대우차에 있다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우선시한 점은 경쟁이 덜하고 사업이 미래 방향과 같으면서 한국인에게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2013~2015년 국내시장 규모만도 16조~20조원, 세계시장은 최소 1,500조원에서 최대 2,0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헬스케어 산업의 거대한 잠재성에 주목했습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미국과 유럽 중심의 산업이었지만 그들이 보유한 특허가 2013~2014년이면 거의 만료되기 때문에 후발주자에 오히려 기회가 되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입장벽이 낮은 합성의약품(케미컬)은 10년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보고 우선은 생산 인프라에 투자해 국제적 품질을 갖춘 항체의약품을 계약생산(CMO)해 매출을 올리고 특허만료를 겨냥해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나서기로 한 것이지요. -이제 계획했던 궤도를 따라 성장해온 10년이 지났습니다. 셀트리온 미래의 청사진을 어떻게 그리고 있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무척 어렵게 한 계단을 올라왔습니다. 두 번째 계단, 앞으로의 10년은 물론 어려움도 있겠지만 보람도 클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바이오 산업의 위기를 맞은 미국과 유럽을 뛰어넘어 새로운 주역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바이오와 케미컬을 결합시키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셀트리온제약을 인수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그에 대비한 것이고 지금까지 인체에 쓰지 못한 케미컬 물질에 대한 특허도 계속 내고 있습니다. 10년 뒤에는 헬스케어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새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미래에는 의약품과 장비ㆍ의료진이 결합되는 새로운 개념의 치료방법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10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고 직원들에게도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외 기업들과 계약생산(CMO)을 하면서 수출대금 원화결제라는 파격적인 계약조건을 관철시켰는데 글로벌 대기업을 상대로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낸 비결은 무엇인가요. ▦한국 기업은 외환시장의 환 변동에 무방비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헤지 수단이 많은 글로벌 대기업이 환리스크를 부담하고 대신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다른 리스크를 부담하자고 한 것입니다. 경영에도 적용되는 인생의 상식은 '빼앗기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가장 정당한 거래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은 상대에게 던지되 상대가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은 내가 부담하는 것 바로 그것이 비즈니스입니다. 다만 '화폐단위에 대해 협상하자'고 덤볐으면 성사되지 않았겟지요.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위한 윈윈 전략'의 어젠다 가운데 하나로 환 문제를 끼워 넣은 것이 요령이라면 요령입니다. -리스크 부담에 대한 사업 파트너 간의 역할분담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텐데요, 바이오 산업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셀트리온이 이미 시가총액 2조원을 넘은 마당에 중소기업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테고 사실상 대기업 범주에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저희가 맡아야 할 몫은 앵커(anchor)입니다. 정부 정책과 잘 부응해서 내 이익만 생각하기보다 바이오 산업 전체의 활성화를 이끌어야 합니다. 그 일환으로 최근 국내 창투사와 손잡고 바이오펀드를 만들어 창업 초기단계인 바이오 벤처에 대한 투자에 나설 계획입니다. 좋은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투자해 함께 기술을 갖는 파트너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창투사는 셀트리온과 같은 바이오 기업이 뒷받침을 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투자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초기 투자를 필요로 하는 바이오벤처의 성공 확률도 높아질 것입니다.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의 바이오 사업 진출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모든 비즈니스에서 품질ㆍ가격경쟁력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바로 타이밍입니다. 셀트리온의 최대 경쟁력 또한 남들보다 적어도 4~5년 앞선 타이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누가 뛰어들어도 저희가 거쳐온 과정을 건너뛸 수 없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따라올 무렵에는 그 다음의 길을 가면 됩니다. 가령 앞으로는 항체의약품과 케미컬의 접합(conjugation)이 이뤄질 텐데요. 지난해 셀트리온제약을 인수하고 케미컬 관련특허를 꾸준히 내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바이오는 기술집약 산업인 만큼 사람이 중요할 텐데요. 셀트리온의 인재관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별다른 인재양성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다만 CEO는 직원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직원들은 그런 저의 진심을 알아주는 것이지요. 셀트리온 창업 초기 매출 없이 6년을 버티는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자살 결심도 세 번이나 했을 정도니까요. 극한상황까지 내몰리고 나니 직원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겠더군요. 저는 직원을 해고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직원이 달라고 하기 전에 회사에서 먼저 해줍니다. 그래서 셀트리온그룹에는 노조가 없습니다. 대우차 시절에 노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투쟁해서 받아본 사람은 사용자를 신뢰하지 않고 투쟁으로 빼앗긴 사람은 처음부터 주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악순환의 원죄는 회사 설립 당시 경영자의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자는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일 뿐 기업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는 셀트리온그룹을 가장 이상적인 기업집단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건전한 경영철학을 갖는 것 외에 CEO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CEO는 이삭을 줍는 사람이 아니라 모를 심는 사람입니다. 이삭 줍는 사람은 관리자지요. 관리자와 경영자는 엄연히 다릅니다. 관리자가 CEO 자리에 앉으면 그 회사의 목표는 현상유지입니다. 결과는 회사의 도태입니다. 경영자는 자신의 룰에 따라 매일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직원의 창의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CEO의 창의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약력 ▲1957년 청주 ▲인천 제물포고교 졸업 ▲건국대 산업공학과 졸업 ▲동대학원 경영학석사 ▲1983년 삼성전기 입사 ▲1991년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 ▲1992년 대우자동차 상임경영고문(전무대우) ▲2000년 넥솔^넥솔바이오텍 창업 ▲2002년~셀트리온 회장
미래 중장기전략 큰틀만 짜는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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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진 사장은
"경영자는 복 받을 일 해야" 첫매출 15억 복지재단에 써


미래의 주요 성장동력 산업인 바이오 산업의 대표적 선두주자로 꼽히는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의 책상 위에서는 결재서류를 찾아보기 힘들다. 셀트리온과 지난해 인수한 셀트리온제약, 그리고 5개 비상장사까지 7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셀트리온그룹을 진두지휘하는 그는 '법적으로 CEO 사인이 필요한 결재'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정기적인 업무보고도 받지 않는다. 그는 회사의 중장기 전략과 연간 계획,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만 관여한다. 나머지 업무는 관리자, 즉 임원들의 몫이다. 그 자신은 미래의 수확을 위해 열심히 '모를 심는 사람'이다. 항상 "CEO의 경쟁력은 미래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모 심기'는 10년 만에 눈부신 경영성과를 내는 것과 함께 오늘날 셀트리온의 위상을 확고해 해놓았다. 지난 1999년 대우자동차를 퇴사하고 '일터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그의 사업체는 올해 바이오 의약품 생산능력 세계 2위, 세계 선두권 바이오시밀러 기업, 세계 최초의 종합 독감항체 치료제 개발 추진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매출은 100% 수출에서 나온다. 처음부터 회사는 한국에 두되 세계를 시장으로 삼았다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국내에서는 "세금 내고 고용하고 투자하는 것밖에 없다." 이 같은 오늘날의 성과는 "10%의 실력과 90%의 운 덕분"이라고 한다. 90%의 운이란 지금까지 10년을 함께 한 셀트리온 직원들과 사업 파트너, 주주들이 자신에게 가져다 준 '복'이다. 6년 동안 단 한푼의 매출도 없이 세 차례나 자살을 생각했다는 그는 그래서 어려움 끝에 성공을 일구게 해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산다고 한다. 그가 6년 동안 기다렸던 첫 매출 15억원 전액을 복지재단 설립에 쓴 것도 그 때문이다. 정작 서 회장 자신은 지난해까지도 전세살이를 해야 했다. "능력과 실력은 경영자의 필요 조건이지만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다"라는 그는 "경영자는 복 받을 짓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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