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시진핑의 실용주의, 홍콩은 예외


지난달 31일 홍콩 정부청사 앞이 검은색 옷에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수천명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일부는 홍콩의 심장인 센트럴(금융중심가)의 도로들을 점거했다. 그들은 "공산당 X" "가짜 민주주의에 속지 말자"는 피켓을 들고 경찰들과 대치했다.

민주화 기대가 무참하게 꺾이면서 홍콩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33년 남짓 남은 1국가 2체제라는 불안한 틀 속에서 안전판을 찾으려는 노력이 무산됐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오는 2017년 차기 홍콩 행정수반 직선에 출마할 수 있는 후보자격을 "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는 애국인사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번 안은 1,200명 규모의 행정장관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한 뒤 이들의 50% 이상 지지를 얻은 사람만 입후보하도록 했다. 후보자 수도 2~3명으로 제한했다. 후보자격과 당선인에 대한 선택권은 중국 중앙정부가 가진다. 애국인사라는 이름으로 친중 인사만 입후보할 수 있도록 했고 당선인에 대한 최종 임명권도 중국 중앙정부가 행사한다. 쉽게 말해 친중 인사가 아니면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다. 사실상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에 홍콩 민주인사들의 반발은 거세다. 중국 정부의 직선제안에 불복종 선언을 한 데 이어 홍콩 중문대 등은 9월 이후 휴업투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행정수반 직선제 놓고 거센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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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센트럴 점령'이라는 도심시위에 나설 예정이다. 직선제는 홍콩을 둘로 나눴다. 친중과 반중으로 나뉘어 반목하며 갈등을 키우고 있다. 여기다 영국까지 이번 조치가 반환 당시의 중영 합의내용과 일치하는지 조사에 나서 중영 갈등의 불씨까지 만들었다. 당시 합의문에는 2047년까지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홍콩에 시행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국 중앙정부의 이번 조치는 어찌 보면 중국으로서는 당연한 결정이다. 홍콩 행정수반은 홍콩인들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중국 중앙정부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입장이다. 자치권을 부여할 뿐이지 홍콩은 중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지역이다. 중국은 17년 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돌려받은 후 50년 정도면 서로의 체제가 융합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의 민주화 수준이 올라가고 홍콩이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 안에 들어온다면 정치적 융합도 가능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홍콩인들이 원하는 직선제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깰 수 있다. 더 나아가 시진핑 정부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분리주의'가 서쪽 끝 신장에 이어 동쪽 끝 홍콩에도 나타나면 자칫 분리독립운동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홍콩인들은 시진핑의 실용주의에 기대를 걸었다. 시 주석은 취임 초기 국민 곁으로 서슴없이 다가갔다.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며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시골집 침상에 걸터앉아 농민과 농가 음식을 함께 먹는 모습은 역대 공산당 지도자들과 달랐다. 부패척결을 내세우며 공산당의 개혁을 내세울 때는 정치개혁의 의지도 내비쳤다. 하지만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시 주석의 정치개혁은 안정적인 권력기반에 만족했는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권력을 제도 안에 가두겠다'는 말과 함께 기대했던 입헌정치·인권보호·언론자유 등은 변화가 없다. 경제는 우향우를 했지만 정치는 여전히 왼쪽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깰 수 있는 홍콩의 정치체제 변화는 시 주석의 실용주의가 적용될 수 없는 불가침 영역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 못깬다" 단호

'하나의 중국'의 또 다른 대상인 대만에 대한 시진핑 정부의 태도는 홍콩에 대한 그것과는 크게 다르다. 일본과의 역사전쟁에서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을 부활시키는가 하면 7·7사변 기념식에서는 시 주석이 직접 국민당의 공로를 인정하는 정치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만 시민단체와 학생들에게 입법원 통과가 저지된 양안 간 서비스 협정 재협상도 진행하고 있다. 대만 민진당의 집권으로 분리독립을 외치며 하나의 중국을 깨는 것을 원치 않는 시진핑 정부의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단호한 시진핑 정부에 홍콩은 이미 잡아서 양식장에서 기르는 물고기지만 대만은 아직 잡지 못한 물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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