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총재가 이끌 한국은행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지난 4년간 단행했던 '개혁(?)' 피로감이 컸던 한은 내부와 시장에서는 '적격 인물'이 총재의 자리에 앉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뒤 금융계에서는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 방향으로 갔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랐다'고 총평하기도 했다. 2년 만에 한은으로 돌아온 이 총재의 데뷔가 무난했던 셈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한은이 보이고 있는 최근 행보는 기대감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두 번째 금통위에서 이 총재의 '금리인상 방향이 맞다'는 단정적인 발언은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한번쯤 눈감아 줄 수는 있다. 반면 최근 한은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인사 논란'은 다르다. 중앙은행의 역할정립보다는 과거 총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인사'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지난 4년간 너무 정치화돼 중앙은행 독립성과 특유의 차분함이 사라졌던 구습이 재현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은 뒷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일 김중수 전 총재의 최측근인 박원식 부총재가 임기를 1년 가까이 남겨두고 전격 사퇴했다. 한은 내부는 잠시 술렁였지만 곧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김 전 총재 측근으로 분류되는 다른 부총재보들도 줄사퇴할 수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더욱이 부총재들의 사임 루머는 이 총재의 해외출장 중에 돌았다. 전임 총재의 인사흔적 지우는 작업에 이 총재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정치공학으로도 비춰졌다. 한은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을 받고 있는 와중에 '정치인사'에 매몰돼 있는 중앙은행의 모습이 안타깝다는 촌평도 이런 이유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내수는 고꾸라지고 있고 원화는 가파르게 고평가돼 우리 경제는 상승이냐 정체의 지속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중앙은행인 한은은 내수를 끌어올리고 환율하락의 악영향을 점검하고 금리인상에 따른 시나리오를 다각도로 분석해 여러 컨틴전시플랜을 내놓아야 할 엄중한 시기다. 그런데 한은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라고는 '누가 사퇴를 했다' '후임으로는 누가 온다더라' 이런 것밖에 없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금리변동이 있기 2~3개월 전에 신호를 주고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전담조직도 신설하겠다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모두 본업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 후 이뤄져야 할 것들이다. 하루빨리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고 우리 경제에 집중하는 한은의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