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박태준과 마패… 떡고물


박태준. 이제는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이름 석자는 해외에서 더 알아준다. 일본을 방문했던 중국의 지도자 덩 샤오핑이 '종합제철소를 건설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일본인들은 이렇게 답했다.'어렵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기 때문이다'이때가 지난 1978년. 포항 영일만의 황무지에 일관제철소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뜬지 불과 10년 만에 포철은 국제적으로도 통하는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은 전세계에서 가장 내실 있는 제철회사로 손꼽힌다. 포스코 성공 비결은 정도 경영 비결은 무엇일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선택과 집중. 가용재원이 거의 없는 형편에서 대일청구권자금을 철강생산에 쏟아부었던 정책 결정은 포스코의 발전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산업구조를 업그레이드시켰다. 두 번째는 땀과 헌신. 지난 13일 타계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을 비롯한 철강인들의 각고의 노력 덕분이다. 급성 폐손상으로 사망한 고인의 폐에서 시꺼먼 먼지와 쇳가루가 나왔다는 소식에는 가슴이 저민다. 박태준과 포스코 신화의 세 번째 요인은 '마패'로 상징되는 정도(正道)경영에 있다. 마패란 건설이 한창이던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박태준 포항제철사장에게 건네준 단 한 장짜리 문서.'건설과 설비구입 등에 관한 모든 권한을 포철이 행사한다'는 내용의 문서 상단에는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얹혀졌다.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통치자가 포철 사장에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는 사실은 기적을 일으켰다. 건설과 기자재 구입에 수반되는 이권을 노린 온갖 청탁과 압력이 사라진 것이다. 박 명예회장의 자서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일본 도쿄에 있던 정부기관인 주일구매소(駐日購買所)는 설비결정 권한을 차지하려고 덤볐다. 우리가 이리저리 따져보고 최고 품질의 설비를 골라놓으면 그들은 우리가 2류로 제쳐놓은 제품을 더 비싼 가격에 계약하라고 우기기 일쑤였다'박 대통령의 사인은 이런 폐단을 없앴다. 뿐이랴. 정치권의 청탁도 흔적을 감췄다. 위력을 발휘한 메모지는 '종이 마패'라는 별칭으로 포스코종합홍보관에 지금도 전시되고 있다. 종이 마패가 없었다면 포스코의 오늘과 국제 철강계의 거목으로서 고인의 위상도 어려웠을지 모른다. 부정이 개입할 소지를 없앤 투명경영이 포스코는 물론 국민 경제의 도약을 이끈 셈이다. 종이마력의 위력 뒤로 한줄기 아쉬움이 남는다. 투명경영이 외자도입사업 전분야에 걸쳐 담보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의 차관이나 지하철 도입에 거액의 정치자금이 제공됐다는 미국 중앙정보부(CIA)나 일본 의회의 보고서도 있다. 정권은 박태준의 청빈을 배워야 고인이 '산업의 쌀'을 만들어내기 위해 폐에 먼지와 석면을 쌓아가던 동시대에 '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어떤 인물은 부정축재로 몰리자 '떡을 만지다 보니 떡고물이 묻었다'며 태연하게 받아쳤다. 현세에서 큰 권력과 부를 누린 그가 사망(2009년)했을 때 언론과 세인은 그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공작정치와 떡고물'만 떠올렸을 뿐이다. 고 박태준과 그의 사후 평가는 격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지도층 인사 중에 '떡고물'로 치부한 유형과 집 한채 남기지 않고 청빈으로 떠난 고 박태준과 같은 유형 두 가지가 있다면 어느 쪽이 많을까 생각해보자. 불행하게도 전자가 많은 것 같다. 고인이 신화를 이룬 영일만 출신이자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7명 보좌관 중 4~5명이 깨끗하지 못한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투명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치부를 대신 말해준다. 개발연대의 추억으로 등장한 정권의 핵심부가 성장은 쏙 빼먹고 개발연대의 비리만 답습하는 현실이 갑갑하다. 고 박태준을 보라. 그처럼 일하고 그처럼 비우고 갈 수 있다면 우리는 나아지리라.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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