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8일] 윌리엄 듀어

태초에 투기가 있었다. 초대 미국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비롯, 벤자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과 알렉산더 해밀턴의 공통점은 두 가지. 건국과 부동산 투기다. 하나같이 땅으로 돈을 벌었다. 부동산의 후속 격인 투자대상은 주식. 1790년 필라델피아 거래소가 설립되며 증권 붐이 일었다. 주요 투자대상은 국채와 은행주. 사회지도층과 상인, 기업인들의 투자클럽은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 시세차익을 누렸다. 작전세력도 덩달아 활개치며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현직 재무부 차관보인 윌리엄 듀어(William Duerㆍ1747.3.18~1799.5.7)를 정점으로 하는 주가조작이 적발됐기 때문. 국채발행 규모의 40%에 달하는 어음을 남발해 마련한 투기자금으로 은행주를 매집한 후 루머를 퍼뜨려 차익을 얻는 수법이 들통나자 거액 피해자가 꼬리를 물었다. 토머스 제퍼슨을 포함해 그에게 투자한 사람들이 입은 피해액은 뉴욕 전체의 부동산 가격과 맞먹었다. 증시 붕괴는 경제공황으로 이어졌다. 은행들은 자금운용을 꺼리고 공장기계가 멈췄다. 미국 최초의 공황인 1792년의 위기를 극복한 주역은 재무장관 해밀턴. 주요채권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을 선언하고 은행에 대출을 독려한 결과 시장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역대최고의 재무장관으로 평가 받는 이유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뉴욕증권거래소도 이 사건의 영향으로 생겼다. 사촌매형인 해밀턴에 의해 감옥에 보내진 듀어는 7년 뒤 옥사했다. 원조 작전세력의 말로는 금새 잊혀졌다. 뉴욕증시가 15~20년을 주기로 출렁거린 1837년과 1857년ㆍ1873년ㆍ1893년ㆍ1907년1ㆍ1929년에도 주가조작이 판쳤다. 회계부정, 시세조정은 여전하다. 투기로 시작한 나라가 아닐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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