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간) 열리는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ECB가 얼마나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회의가 재임 2년 반을 갓 넘긴 마리오 드라기(66) ECB 총재의 가장 중대한 고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통계청(유로스태트)의 3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5%에 그쳤다. 거의 4년 새 최저 수준으로 전문가들의 예상치 0.6%보다도 낮았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도 0.9% 증가에 머물렀다. ECB가 목표로 잡는 연 2% 인플레이션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유로존 저물가 현상이 디플레이션(물가하락)에 근접했다는 분석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침체된 수요가 낳은 저물가는 높은 실업률, 낮은 성장세와 겹쳐 유로존 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4월 유로존 실업률은 11.7%로 전월보다 0.1%포인트 하락했지만 미국·일본 등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 4일 공개된 올 1·4분기 경제성장률도 전 분기 대비 0.2%로 4분기 연속 1% 미만의 저성장을 이어갔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이제는 드라기 ECB 총재가 바주카포를 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드라기의 바주카포란 벤 버냉키의 '헬리콥터'와 대응되는 말로 포탄을 쏘듯 유동성을 살포한다는 의미다. 이미 5일 회의에서 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자금에 붙는 예치금리의 마이너스화를 비롯해 주요 금리의 일제 인하는 기정사실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투자자들은 추가로 깜짝 놀랄 만한 부양책이 나올지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민심이 재확인된 데다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유로존 각국 정부가 부양책을 쓸 형편이 안 된다는 점도 '바주카포 발사'를 더욱 확신하게 한다.
마크 길버트 블룸버그 런던지국장은 "드라기는 ECB의 부양의지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이번에 특별한 뭔가를 더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금리인하만으로는 역내 대출활성화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많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2년 7,710억유로에 달했던 유럽 은행들의 ECB 예치금 규모는 290억유로까지 급감했다.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돼 은행들이 예치금을 대출로 돌려도 시장에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닌 셈이다.
현재 금리 외 주목받는 추가 수단은 유럽 은행들의 기업 대출,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촉진하기 위해 과거 두 번 실시됐던 저금리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이다. 국채와 같은 자산을 매입해 돈을 푸는 미국식 양적완화의 구체적 계획표가 나올지도 주요 관심사다. 다만 유럽 각국의 채권시장 구조가 다른 데다 자산유동화증권(ABS) 시장도 침체돼 있어 당장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기는 어렵다고 WSJ는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