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무차별 테러·암살… 카프카즈 '러시아판 아프간' 되나

이슬람등 분리주의 세력 젊은층 지지 얻어 급속 세 확장<br>잉구셰티아선 자살폭탄테러로 20명 죽고 136명 다쳐<br>러시아, 대책마련 불구 자치정부 부패·경제위기로 수습 난항

지난 17일(현지시간) 군인들이 잉구셰티아 나즈란의 폭탄테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이날 무장 테러범이 50kg의 폭탄을 실은 트럭을 몰고 나즈란의 경찰본부로 돌진, 20명이 숨지고 136명이 다치게 했다. 나즈란=AP연합뉴스


잉구셰티아, 체첸, 다게스탄. 러시아 남부의 카프카즈 산맥 북쪽 산록에 위치한 이들 3개의 자치공화국이 '러시아판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이슬람근본주의자 등 과격분자들이 무차별 테러를 벌이고 현지 자치정부가 불법 납치와 고문을 자행하면서 사실상 무법천지로 변하고 있다. 지난 17일 잉구셰티아에서 발생한 자살폭탄테러는 이 곳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준다. 폭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잉구셰티아 최대도시 나즈란의 경찰본부로 돌진한 뒤 폭발, 20명이 숨지고 136명이 다쳤다. 러시아 정부는 이 소식에 경악했다. 지난 6월 22일 유누스-벡 예브쿠로프 잉구셰티아 대통령이 자살 폭탄 테러로 중상을 입었을 때도 동요하지 않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사건 다음날 남쪽을 직행해 잉구셰티아 인근 스타브로폴 시에서 긴급 안보회의를 주재하고, "무장 세력이 건재하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확연히 개선되고 있다"며 낙관하던 태도에서 180도 선회한 것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사태의 책임을 물어 잉구셰티아 안보장관을 즉각 경질하고, KGB출신으로 2차 체첸전에 참가한 측근 인사 아르카디 예델레프 내무차관을 현지 경찰총수로 파견했다. 메드베데프는 '획기적인' 대책도 주문했다. 그렇지만 현지 경제상황을 개선시키겠다는 것은 빼고는 실로비키(KGB출신 유력인사)를 활용하고 테러리스트에 대한 처벌을 강요하는 내용 일색이어서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모스크바타임스는 러시아 정부가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 카프카즈의 한 정세 전문가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제 안정이냐 혼란이냐를 두고 고민할 상황이 아니다. 그가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겠지만 3가지 선택만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이슬람 지하운동 세력과 전면전을 치르는 것이며, 나머지는 북 카프카즈에 러시아에 우호적인 독립국을 세우거나 아니면 적대적인 이슬람 정권을 용인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러시아는 카프카즈 산맥 남쪽 그루지야와의 전쟁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지역 패권자임을 전세계에 각인시켰다. 서방의 지원을 기대했던 그루지야는 불과 며칠 만에 국토의 핵심지역이 점령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러시아의 영향력은 급속하게 확대됐고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내세운 미국의 예봉은 꺾였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자국 영토인 북 카프카즈가 혼란에 빠져들면서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특히 북 카프카즈의 7개 자치공화국 중 체첸과 잉구셰티아, 다게스탄의 상황은 올 들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잉구셰티아에서는 이달 들어 건설부 장관이 집무중 총격으로 사망했으며, 지난 7월에는 잉구셰티아 수도 마가스의 시장이 폭탄 테러를 당했다. 체첸에서는 인권운동가가 나탈랴 에스테미로바 납치 살해됐고 아동자선단체 사무총장 부부 역시 납치 살해됐다. 최근에는 경찰 고위급 인사 4명이 폭사했다. 다게스탄에서는 지난 6월 대 테러 작전을 지위하던 다게스탄 내무장관이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피살됐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이 때 다게스탄을 방문해 반군 소탕을 지시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가 떠난 지 불과 2시간 만에 경찰 2명이 피살됐다. 이달에는 괴한이 목욕탕에 난입, 경찰과 종업원을 사살했다. 현재 다게스탄 내 무장세력은 이슬람근본주의자를 중심으로 1,000명이 넘을 정도로 커졌다. 북 카프카즈가 러시아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것은 91년 구 소련이 해체된 이후다. 러시아는 지난 94년부터 2년간 체첸 분리주의자들과 1차 전쟁을 치렀고, 99년에는 2차 체첸전을 감행해 지금까지 작전을 이어오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체첸과 잉구셰티아 국경지대에 3,0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이로 인한 전비 지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2차 체첸전은 북 카프카즈 정책의 해답처럼 여겨졌었다. 현지에 강경파 대통령을 앉히고 군사 작전을 구사하는 전략은 성공을 거두는 듯 했다. 하지만 점차 한계를 들어내고 있다. 분리주의 세력은 체첸에 인접한 잉구셰티아, 다게스탄으로 흘러 들었고, 부패한 현지 자치정부에 환멸을 느끼는 젊은 층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세력을 급속하게 확장하고 있다. 금융위기는 북 카프카즈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별다른 시설과 자원이 없는 이곳은 러시아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일례로 다게스탄자치공화국은 예산의 80%를 러시아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넘치는 현금을 뿌리며 민심을 얻을 수 있었지만 금융 위기로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더 이상 자금을 동원하는 전략은 불가능해졌다. 지난 7월 말, 러시아와 다게스탄을 잇는 카프카즈 1번 도로가 시위자들로 점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게스탄의 2대 도시인 카스피스크 주민들이 요금 미납에 따른 단전 조치에 항의, 도로를 봉쇄하고 타이어에 불을 지르며 저항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을 돈을 벌기 위해 테러에 가담하고 있다. 다게스탄 내무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일상적인 공격에 가담할 경우 10만~20만 루블(약 3,000~6,000달러)을 받을 수 있다. 고위급 인사라면 50만 루블까지 올라가고 지난 6월 피살된 내무장관 같은 최고위급은 200만 루블까지 뛴다. 현지 정부의 부패는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한다. 러시아 정부는 현지 자치정부의 협조를 얻기 위해 이들의 전횡과 불법을 눈감아주고 있다. 하지만 강경책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야만적인 평화'에 불과하다. 더구나 특정 민족을 우대하는 정책은 다른 민족의 반감을 사고 있다. 인권운동가인 글나라 루스타모바는 뉴스위크에서 "주민들이 무기를 들고 산속으로 숨어들도록 강요하는 것은 다름 아닌 러시아 정부"라고 주장했다. 지역 전문가인 루스란 쿠르바노프는 한술 더 떠 "북 카프카즈는 급속하게 탈레반화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점증하는 과격 이슬람주의자와 마약 거래, 외국 및 부패한 지역 관리와의 유착을 통한 자금을 확보하는 현상이 현재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겪는 상황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난관에 봉착한 것처럼, 러시아가 카프카즈라는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북 카프카즈 문제는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과 직결된다. 미국 중앙아시아-카프카즈 연구소의 세반트 코넬 이사는 "북 카프카즈가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국력을 시험하는 잣대라는데 있다. 만약 러시아가 자국 영토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강대국으로서의 러시아 입지는 크게 손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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