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실적은 ‘그런대로’, 경기전망은 ‘글쎄요’.
1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의 4ㆍ4분기 경기전망은 ‘불확실성’에서 출발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반도체ㆍ자동차ㆍ석유화학 등의 호황으로 경영실적은 3ㆍ4분기보다 호전되겠지만 내년까지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내년도 경기전망은 더욱 비관적이다. 1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빠져든다고는 보지 않지만 이대로 내수부진이 장기화된다면 더블딥(double dip)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은 현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 더블딥은 침체된 경기가 반짝 회복조짐을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침체 현상을 말한다.
구조조정본부장들은 그러나 풍부한 자금력과 위기관리능력을 바탕으로 자체 실적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경영실적은 좋아질 것=10대 그룹 중 8개 그룹이 4ㆍ4분기 실적을 낙관적으로 본 것은 우선 반도체ㆍ자동차 등 수출 주력제품들의 선전에 기인한다. 반도체의 경우 삼성전자가 4기가비트 플래시메모리와 80나노 공정을 적용한 2기가 DDR2 D램, 667㎒ 모바일CPU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이미 경쟁업체에 비해 두걸음 정도 앞서 나아가고 있다.
자동차도 현대차와 기아차의 신차 효과가 4ㆍ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경영실적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석유화학업종의 경우도 중국의 수요증가가 제품가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유화업종의 실적증가를 지속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10대 그룹 중 내수업종이 주력인 2개 그룹은 4ㆍ4분기 실적이 3ㆍ4분기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그룹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내수가 올해 경영실적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분석했다.
◇경영여건은 여전히 비관적=4ㆍ4분기 경영여건을 좌우하는 요인에 대해 1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은 우선 제품가격이 하락하며 마진율이 낮아지는 것을 우려했다. 또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도 경영여건 악화의 원인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무역연구소가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4ㆍ4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EBSI)지수는 올 1ㆍ4분기 135에서 4ㆍ4분기 104로 크게 떨어지며 수출경기가 빠르게 냉각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밖에 자금사정ㆍ정치상황ㆍ기업규제 등도 4ㆍ4분기 경영여건을 악화시킬 것으로 1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은 지적했다.
경영여건이 당초 예상보다 더디게 회복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1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중 6명은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를 꼽았다. 특히 원유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을 앞두고 배럴당(WTI 기준) 50달러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유가의 추가상승은 기업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예상 외로 중국의 긴축정책은 경영여건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와 채용은 계획한 만큼만=4ㆍ4분기에 이어 내년의 경기회복도 불투명한 만큼 주요 그룹들은 신규투자에 있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국내 설비투자를 당초 계획보다 늘리겠다는 그룹이 단 한곳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 불확실성이 기업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그룹의 경우 눈을 해외로 돌려 해외투자에만 집중하겠다고 답해 내년에도 내수경기 회복이 쉽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일자리 창출도 예상만큼 대규모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1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중 2명만 4ㆍ4분기 채용을 당초 계획보다 늘리겠다고 답한 것에 비춰 올 연말에도 대졸 신입사원들의 구직난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1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은 경제활력 회복을 위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과감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소세 추가인하 등 세제정책과 정책 일관성 및 신뢰구축, 금융정책, 추경편성 등 재정확대 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