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은 ‘올드 블루 아이즈’ 프랭크 시내트라가 82세로 사망한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해 우표가 발행되고 책과 CD와 DVD 컬렉션이 나오는가 하면 TV는 한달 내내 그의 영화들을 방영하고 있다. 그는 절제된 예술성으로 팝송에 스타일을 부여하고 또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가수였다.
그의 로맨틱하고 우수가 깃든 창법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독특한 것이었다. 버본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흥얼거리듯 부르는 시내트라의 노래는 팝보다 재즈풍의 것들이 훨씬 더 멋있다.
그의 대표곡 ‘마이 웨이’(폴 앵카 작곡)와 ‘뉴욕 뉴욕’도 좋지만 까칠까칠한 음색으로 부르는 재즈기를 갖춘 노래들인 ‘문라이트 인 버몬트’ ‘비위치트’ ‘아이브 갓 유 언더 마이 스킨’ 그리고 ‘콜 미 이리스판서블’ 등도 팬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는 노래들이다.
생애 총 58편의 영화에 나온 시내트라가 배우로서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를 부활시켜 준 영화가 오스카 작품상을 탄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였다. 그는 여기서 천하태평 성격에 반항적인 육군 졸병 마지오로 나와 군영창장 어네스트 보그나인에게 박박 기어오르다가 매 맞아 죽는 역으로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살아 있을 때 이미 전설이 된 시내트라는 뉴저지 항구 도시 호보켄(영화 ‘워트프론트’의 무대)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젊은 시절 항구의 건달들과 사귀면서 시작된 그와 무법자들 간 인연은 시내트라가 유명해진 뒤에도 계속돼 그는 늘 ‘마피아의 친구’라는 오명을 달고 다녀야 했다.
콩쿠르 대회서 우승한 것을 인연으로 맨해튼으로 진출, 당시 빅밴드의 제1인자였던 타미 도시악단의 전속 가수가 되었다. 푹 패인 양 볼과 허기진 새파란 눈동자에 비쩍 마른 시내트라가 비음 섞인 폭신한 음성으로 부르는 로맨틱한 노래에 10대 소녀들은 죽는다고 아우성들을 쳐댔었다.
악동 기질과 신사적 세련미를 함께 갖췄던 시내트라는 쿨 가이였다. 그는 드라매틱한 창법으로 노래에 귀족적 품위를 가미, 팝송을 듣고 감각하는 방법을 완전히 새로 바꿔 놓은 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