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부동산세제, 노인에게 자비를

정부의 부동산종합대책이 발표 됐다. 그리고 국회에서 입법논의를 시작했다. 부동산의 거래세와 보유세를 대폭 올리는 것이 이 세제의 골자다. ‘가진 자’에 대한 세금이라 많은 국민들이 이를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딱하게도 노인들이 노후대책으로 가진 재산과 투기꾼이 투기 목적으로 가진 재산을 구별 없이 과세하려는 데서 문제가 생겼다. 노인이 여생을 소득 없이 살자면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가진 자’로 몰려서 살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부동산을 장기저축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예로부터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파’하면서 경쟁적으로 근검 절약해 논을 사는 식으로 저축을 해왔다. 이제는 세월이 변해 저축 수단도 따라 변했다. 저축 수단이 논 대신 아파트로 대치된 것이다. ‘사촌이 아파트를 사면 배가 아프게’ 됐다. 큰 평수를 사면 더욱 배가 아플 것이고. 필자 주변의 노인을 보면 젊었을 때 조그만 집에 전세 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돈이 모이면 소형 아파트를 사고 중형ㆍ대형 아파트로 옮겨가면서 저축을 늘려나갔다. 여유가 생기면 한 채 더 사두기도 했다. 대개 수입이 없어지게 되는 시점에 가장 큰 아파트에서 살다가 그 후에는 아파트의 규모를 줄여가면서 그 차액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다음에는 값이 싼 변두리로 더 변두리로 옮겨가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 노후생활 설계도 요즘 와서는 수명이 연장돼서 언제까지 가능할지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옮길 때마다 높은 거래세가 붙고 가만히 있어도 큰 보유세를 매긴다니 여간 걱정이 아니다. 젊었을 때처럼 수입이 있으면 생활비를 줄여서 그 수입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겠지만 늙어서 수입이 없게 되니 매번 아파트값의 일부를 헐어서 세금으로 내야 한다. 보유세를 1%로 올리자면서 미국과도 비교한다. 그러나 미국과는 소득 수준으로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집값이 3배가 돼 같은 세율을 적용하면 소득비교로는 미국보다 3배나 무거운 보유세가 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주택 매각에 따른 거래세(양도소득세)를 평생 유예시킬 수 있는 길이 있고 취득세와 등록세는 아예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노인에게 불리한 부분만 따와서 세법을 만드니 노인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들이 낼 거래세나 보유세는 젊었을 때 소득세를 물면서 벌어 모았던 소중한 재산에서 내는 세금이다. 여기에는 노인의 온갖 애환이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노인의 경우 쓰다 남게 되면 어김없이 상속세로 국가에 바칠 텐데도 말이다. 세제를 재정수요를 조달하는 수단 이상으로 사용하면 사회와 경제가 순조롭지 않게 되기 십상이다. 얼마 전까지는 미운 사람 다스리기 위한 세무사찰도 있었다. 무슨 성금을 안 낸다고 세무사찰하고 심지어는 과외 공부시킨다고 세무사찰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부동산가격을 잡겠다고 여러 가지 세제를 궁리 하는데 그럴수록 노인들은 살기가 점점 무서워진다. 젊을 때 근검 절약해 아파트를 장만하고 살아가면서 평수를 늘려가다가 늙어서는 평수를 줄여가며 살아가는 그 소박한 삶의 궤도를 뒤틀리게 하는 세제는 결국 국민들로부터도 환영받기 어려울 것이다. 원칙적으로 부동산값은 무리하게 세금으로 잡을 일이 아니다. 공급조절이나 금리정책 등 경제정책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세금으로 부동산값을 잡으려고 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그리고 국민들은 마땅한 저축 수단을 잃게 된다. 해방 후 지난 60년을 보라. 부동산 외에 달리 확실한 장기저축 수단이 있었던가. 금융상품을 믿고 노후를 설계하기에는 과거 경험칙상 너무 불안하다. 손쉽다고 해서 어린애 벌주듯 무차별로 세금을 매기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투기 억제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은퇴한 노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보장제가 미비된 나라에서는 60세 이상 노인에게 거래세와 보유세를 감면해줘야 한다. 그래서 자기가 저축했던 재산으로 여생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예전에는 연령별로 세제를 달리 취급하는 것이 사무적으로 매우 번거로웠겠지만 지금은 모든 자료가 전산화돼 있으니 행정사무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쓰다가 남게 되면 상속세를 내지 않는가. 부동산세제시여 아름답게 살아가는 착한 노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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