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염치없는 은행들

"(은행들의 주장이) 참 궁색하네요." 시중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예금보험기금 공동계정 도입안(예금보험료의 절반을 떼 공동계정 설립)에 반대하면서 내놓은 영국식 공동계정 제안(회수 조건으로 은행권 예보기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는 "은행권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된다"고까지 했다. 금융권에서조차 은행들이 사실상 정부의 공동계정 도입안을 거부한 데 대해 심정적으로 이해는 하면서도 과거 은행의 모습을 생각하면 적절하지 못하다고 본다. 은행이 쌓아놓은 예보기금을 부실 저축은행에 투입하면 정작 은행이 위험에 처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논리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 돈을 남이 가져다 쓰면 기분 좋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예금자 보호를 위한 예보기금을 마치 구조조정기금처럼 쓰면 예금자보호법의 근본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은행 측 주장도 타당하다. 포인트는 그 같은 주장을 어떻게 은행이 할 수 있느냐는 것. 외환위기 이후 은행은 90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을 수혈 받아 소생했다. 신한금융그룹이 업계 1위가 된 것도 정부의 지원(조흥은행ㆍLG카드) 없이는 불가능했다.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은행과 국민은행도 정부의 금융안정책에 직간접적인 수혜를 받았다. 가까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정부는 은행을 위해 1,000억달러 규모의 외화지급보증을 섰다. SC제일은행과 외환은행 등 외국계 은행도 혜택을 받았다. '공동계정' 차원이 아니라 파격적일 정도로 국민의 세금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은행이다. 건망증 때문이 아니라면 은행들이 정부의 공동계정 도입안을 반대하는 것은 '자신들의 힘든 시절'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라는 이기적 계산의 발로로 읽힌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일분 일초가 아쉬운 상황이다. 역으로 공동계정을 통해 은행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금융제국 씨티가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을 지 누가 알았겠나.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