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 금세기에 들어 경쟁의 패러다임이 완제품에서 부품ㆍ소재 중심으로 더욱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이는 세계 산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진행돼왔으나 우리가 실감하지 못한 감이 있다.
세계적 거대 다국적기업인 인텔ㆍ보슈ㆍ델파이 등이 저마다 자사의 생산품을 내세우면서 세계표준을 선점하고 있고 부품ㆍ소재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과의 승산 없는 경쟁은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오죽하면 노 대통령이 방문한 후 `상하이 쇼크`라는 말이 나왔을까. 독일ㆍ노르웨이ㆍ이스라엘 등 지식기반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점을 간파하고 제조생산 기반을 넘어 연구개발(R&D)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생산을 하더라도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경쟁력 높은 품목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값싸고 품질만 좋으면 전세계 어디든지 납품하고 생산을 좌지우지하는 부품조달 글로벌소싱(Global Souricing) 전략을 확산시키고 있다.
우리의 부품ㆍ소재산업은 수출지향적 완제품을 고집해온 탓에 대일 무역 수지적자가 매년 100억달러 이상 지속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반도체 등 8개 품목군이 근 10년간 상위 10대 수입품목에 계속 포함되고 있는 현상이다.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세계적 수출국이면서 동시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이다. 물론 비메모리반도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정부의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지난 70년대 중반 기계류 부품ㆍ소재 국산화개발을 거쳐 86년에서 99년까지 자본재산업 국산화프로젝트를 통해 4,087개 품목의 국산화개발을 지원했으나 융자형태의 기술개발 소요자금의 지원에 머물러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즉 기계류를 중심으로 한 단순한 국산화개발 지원은 단순 수입대체에 국한되기 때문에 세계일류 부품ㆍ소재 개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 “수출해서 번 돈 남 주는 꼴”이라든가 “한국경제는 양쯔강의 가마우찌”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이제 새로운 정책입안 등을 통해 세계적인 부품ㆍ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새로운 `캐시카우`로 키워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품ㆍ소재`에 대한 의식전환이 있어야겠다. 부품ㆍ소재는 보이지 않는 중간재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최종재로서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기술력을 갖춘 중견ㆍ대기업이 부품ㆍ소재 개발에 뛰어들어야 이 분야가 만년 하청산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전속적 거래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더욱이 세계시장 진입이 가능해진다.
둘째, 경쟁여건 조성에 새로운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지원대상을 업종이 아닌 `될 만한 기업` 위주로 집중해야 하며, 특히 개발자금이 막대하게 소요되는 소재 분야는 대기업의 참여도 확대돼야 한다. 또한 기술 관련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발굴하고 있는 차세대 성장동력에 필요한 핵심기술 개발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 로드맵`이 마련되고 연계돼야 하겠다.
셋째, 수요연계가 전제되는 기술개발에 무게를 둬야 한다. 부품ㆍ소재는 그 특성상 써주는 데가 있어야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초기 기술개발뿐 아니라 양산단계까지의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느 정도 안정된 규모의 기업이 적극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우수인재 확보와 활용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공공연구기관의 우수 연구자원을 총체적으로 연계시켜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기업현장에 이식(移植)시켜야 하겠다. 지난해부터 `부품소재통합연구단`에서 추진 중인 `박사급 연구인력의 현장상주 파견사업`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효과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정부자금 50%를 투입해 기업이 필요한 박사급 연구원을 한국생산기술연구원ㆍ한국기계연구원 등 16개 공공연구기관으로부터 파견하도록 해 현장에서의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하는 사업이다.
다섯째, 대일 투자유치의 집중도를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에서 실패한 경험을 지닌 일본 투자자들 상당수가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다 경기의 장기침체, 모기업과 부품기업간의 전속적 거래, 고령화와 고비용구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내부요인을 적극 활용, 일본의 기술과 자금을 국내에 유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왜 첨단산업이 각광받는 지금 다시 부품ㆍ소재를 강조해야만 하는가.
부품ㆍ소재는 `보조`가 아닌 `핵심적인 다수`로서 `작지만 큰 국가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우리의 먹거리 `캐시카우`를 찾는 일은 바로 부품ㆍ소재산업 육성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이덕근(부품소재전문기업 지원센터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