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합병 막올랐다] (제1부) 4. 전문가 진단졸속합병땐 더 큰 부작용… 정공버버 택해야
최근 은행합병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과 관련해 대부분의 경제·금융전문가들은 『더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며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긴 졸속합병은 더 큰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며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짝짓기」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하루 빨리 해소시키고 국내은행들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불가피하지만 어떤 합병조합이든 장단점이 있는 만큼 보다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
이는 정부가 마치 은행합병을 금융 구조조정의 「완결판」으로 생각하거나 은행들이 합병하지 않으면 곧 망할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은행원들은 물론 시장전반에 불안감이 잔뜩 고조된 상황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적의 합병조합은 없다=90년도 이후 기업들의 잇단 대형부도 등으로 인해 국내은행들은 현재 「소매금융은행=우량은행」「기업금융은행=부실은행」이라는 구도에 놓여 있다.
김장희(金璋熙) 국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단순한 덩치키우기 차원을 떠나 국가경제 전체적인 안목에서 추진돼야 한다』며 『이 점에서 소매금융 위주의 우량은행간 합병은 「기업금융 활성화」라는 취지를 살릴 수 없으며 우량은행과 부실은행간 합병 역시 별다른 시너지효과 없이 어정쩡한 규모의 은행만 탄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金연구위원은 『공적자금 투입은행간 합병이 비교적 이같은 취지를 살릴 수 있고 규모의 경제도 노릴 수 있지만 잠재부실 요인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합병은 의미가 없으며 결과적으로 최적의 합병조합을 만들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동현(池東炫)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지금으로서는 합병에 앞서 은행은 물론 금융권 내의 잠재부실을 털어내는 것이 관건』이라며 『그렇지 않고는 어떤 형태의 합병조합이든 「덩치키우기」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공법을 택하라=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어차피 시너지효과 창출여부를 놓고 시간을 끌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부실채권을 깨끗이 털어내게 한 뒤 정부가 나서 공적자금을 투입, 합병을 유도하는 등의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며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이나 국민여론 등을 의식해 이를 기피한다면 경제불안의 뿌리를 뽑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은행장도 『정부가 해외에 매각된 제일은행에는 「벌거벗고 다 주면서」 다른 국내은행들에 대해서는 알아서 합병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압박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단순히 해외의 합병사례만 나열하거나 모럴해저드라고 밀어붙이지 말고 합병을 전후한 정부지원책이나 청사진 등 명확한 「당근」을 제시해야 합병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의 또다른 관계자도 『이미 몇몇 은행들이 다양한 짝짓기 조합을 염두에 두고 분석작업에 들어간 만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각 짝짓기 조합별로 어떠한 지원책이 가능한지를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자본과의 연대를 꾀하라=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은행간 합병과 관련, 『구조조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단순한 은행간 짝짓기 외에도 재벌의 지배를 많이 받고 있는 2금융권과의 결합을 통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조화로운 연대」를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은행간 합병이 대내외적인 경쟁력 제고 외에 기업금융 활성화라는 기본목적을 깔고 있는 만큼 현재 금융권 부실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는 은행과 기업(재벌)들의 상호조율을 통해 (필요하다면 정부도 나서서) 증권·투신은 물론 보험·여신전문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구조조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시장 전체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이데올로기적 접근법」으로 은행합병 하나에만 목을 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진우기자RAIN@SED.CO.KR
입력시간 2000/05/2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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