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9월 2일] 국민연금은 만만한 곳간?

“국민연금이야 원래 정부 곳간 아니었나요?” 금융위원회가 국민연금의 주식 매수를 재촉하고 나선 1일, 운용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임원의 냉소적인 말이다. 코스피지수가 장중 한때 1,400선까지 위협하자 궁지에 몰린 정부는 결국 국민연금이란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들었다. “주식매수 여력이 10조원이다.” “지금이 저가매수의 기회다.” “기관이 시장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등등. 증권사들의 입에 발린 리포트가 아니다. 한 나라의 정부가 금융시장에 증시 개장 중 1시간 만에 내뱉은 말들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장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코스피지수를 60포인트 가까이 끌어내렸다. 시장에서 발휘되고 있는 정부의 힘이 어디까지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현금지급기’ 노릇을 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이미 연초 서브프라임 사태로 주가가 폭락하자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연기금의 주식투자계획을 앞당겨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상반기 중 4조3,000억원에 달하는 주식투자 손실을 입었다. 주가가 또 떨어지자 정부는 황급하게 국민연금부터 찾았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주식투자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권한이 없다는 건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말이 돼버렸다. 국민연금 쪽은 ‘당연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정부도 알다시피 최근의 주가 하락은 국제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글로벌 악재 때문이다. 굳이 하나의 이유를 더 붙이자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이른바 ‘강달러’ 세력이 부추긴 환율 급등에 따른 통화가치 불안 때문이다. 이렇게 불을 질러 놓고 주가부양 해답이라고 내놓은 것이 국민연금 붓기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더 커져서 연금 손실이 확대되면 정부가 과연 책임질 수 있을까. 아마 책임은커녕 그때 가서도 “더 매력적인 저가매수의 기회” 운운하며 공격적인 연기금 동원을 더욱 부추기지 않을까. 농부의 곳간에서 쌀을 퍼낼 때도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퍼낸 쌀로 몇 끼를 먹을 수 있는 지를 따지는 게 상식이다. 정부가 이렇게 안일한 대책을 내놓는 동안 대한민국 금융시장의 위기는 점점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