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기업] 고금리대출 중도상환 러시

기업들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고금리로 빌렸던 돈을 만기 전에 갚겠다며 대거 상환에 나서고 있다. 이에따라 시중은행들의 자금운용에 비상이 걸렸다.기업들은 수출에 따른 경영실적 호조와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과거 고금리로 빌렸던 대출금 상환에 쏟아붓고 있다. 특히 신용등급이 높은 일부 재벌 계열사들은 회사채를 발행해 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대출금 중도상환에 활용, 은행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삼성의 경우 최근 각 은행에 대출금을 중도상환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있는데 상환 금액이 최소한 조 단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지난해 삼성이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각 계열사별로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엄청난 자금을 조달했으나 기아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자 은행빚을 갚고 있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유자금으로 은행빚 갚자= 동부그룹이 최근 사옥매각 등 구조조정으로 마련한 1,000억원을 은행빚 정리에 활용한 것을 비롯해 롯데, 태광 등 자금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은 기업들이 줄줄이 중도상환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한화그룹도 회사채 발행 등으로 조달한 1,000여억원을 대출금 중도상환에 쓰겠다는 의사를 은행측에 밝히고 있다. 자금여력이 있는 기업들의 경우 「금고정리」 차원에서 대출금을 만기전 상환하고 있다. IMF 이후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비상용 실탄」을 넉넉하게 챙겨두었으나 최근 금리가 하향 추세인데다 회사채 발행도 수월해진만큼, 은행빚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 롯데 관계자는 『금리가 높은 차입금은 모두 갚고 가급적이면 회사채 발행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간 다툼= 기업들은 최근 시중 실세금리가 7%대까지 내려가자 최고 20% 수준에 빌렸던 자금을 속속 갚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중도상환을 받을 경우 손해가 불가피하다』며 이를 가로막고 있어 곳곳에서 마찰이 불거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비싼 이자를 주기로 하고 받아들인 예금에는 약정이자를 줘야하는데, 고금리로 꿔준 돈이 일찍 돌아오면 마진이 줄어들기 때문에 중도상환을 거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탁대출 상환 봇물=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신탁대출이 대거 중도상환되고 있어 은행들은 골치를 앓고 있다. 특히 각 은행이 가입고객에게 확정 고금리를 보장한 개발신탁 대출에 기업들의 중도상환이 몰아치고 있어 은행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신탁대출은 IMF 이후 자금난에 허덕이던 기업들에게 「오아시스」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 시중은행들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찾아온 기업들을 고금리 신탁계정 대출로 몰아넣으면서 돈장사를 해왔다. 한 기업의 자금팀장은 『지난해초 자금난에 시달릴 때는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을 맞춰야 한다면서 꿔간 돈을 갚으라고 다그치더니 이제는 돈을 갚지 말라고 아우성』이라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돈 굴릴 곳이 없는 은행=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상환받아도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이나 증자를 통한 자금조달을 선호하고 있는데다 설비투자계획이 거의 없어 은행권 자금수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 일부 은행이 주식투자에 다시 나서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이에 따라 외환·신한은행 등은 기업들이 중도상환 의사를 보일 경우, 금리를 낮춰줄테니 만기에 갚아달라며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일부 은행, 중도상환 수수료 도입추진= 외환·조흥은행 등은 대출금 중도상환에 따른 기업과의 마찰 및 은행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벌칙금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대출금을 만기 전에 갚을 경우 일정액의 수수료를 매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적절한 시기를 보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상복·신경립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