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WHO 추진 '코스모스' 프로젝트, 휴대폰 전자파 유해성 여부 밝혀낼까

파퓰러 사이언스 www.popsci.co.kr<br>25만명 대상 20~30년간 연구로 표본숫자 부족등 보완<br>2029년 신뢰도 높은 결과 나와… "안전성 보완 자료로"

휴대폰 없는 세상은 영원한 꿈일지 모른다. 하지만 휴대폰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를 규명해 안전한 휴대폰을 만드는 일은 꿈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휴대폰 전자파에 대한 오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25만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휴대폰 전자파의 유해성은 학계의 오랜 논란거리다. 하지만 아직도 확실한 결론이 내려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연구자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도출돼 휴대폰 사용자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이 같은 논란을 종식시킬 장기적인 대규모 국제협력연구를 시작했다. #열작용과 비열작용 현대인들은 매일 같이 송전선이나 가전기기ㆍ휴대폰 등에서 방출되는 다양한 강도의 전자파에 노출돼 있다. 이 중 300~3,000㎒ 대역의 극초단파를 사용하는 휴대폰은 고주파의 전자파를 방출한다. 특히 전화를 송수신하거나 전파가 미약한 지역에서 신호를 탐지할 때 안테나에서 더욱 강한 전자파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휴대폰 전자파가 열작용과 비열작용을 유발, 인체에 악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열작용은 조직세포의 온도를 급상승시켜 기능 이상 및 세포파괴를 일으키는 것이며 비열작용은 조직세포 내 대사와 관련된 이온물질이나 멜라토닌 등 호르몬의 분비 이상을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비열작용이 두통, 기억력 감퇴, 백혈병, 불임, 뇌종양 등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데니스 헨쇼 영국 브리스틀대 물리학 박사는 지난 2006년 송전선의 전자파가 인체에 흡수되면 멜라토닌 생성을 방해해 체내 유전적 손상에 대응하는 면역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는 휴대폰 전자파도 인체세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휴대폰 전자파가 세포 간 신호전달에 영향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로니 세거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교수가 2007년 쥐를 900㎒대의 전자파에 노출시킨 결과 이렇게 나타난 것. 그는 인간도 휴대폰 전자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된 견해를 가진 학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휴대폰 전자파의 열작용ㆍ비열작용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적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휴대폰은 안전하며 휴대폰 전자파가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 일축한다. 마이클 레파촐리 이탈리아 로마대 초빙교수가 1996년 진행한 국제전자파 프로젝트에서도 전자파가 뇌종양에 관련돼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휴대폰 전자파가 뇌종양을 유발한다는 소송도 여러 건 진행됐지만 승소한 것은 한 건도 없다. 올 초에는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의 게리 어렌대시 박사팀에 의해 휴대폰 전자파가 오히려 치매개선 효과를 발휘한다는 연구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전자파 과민증…질환? 심리적 효과? 문제는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전자파로 인한 과민증상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파 과민증(EHS)'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대표적. EHS는 휴대폰 등 전자기기의 전자파로 어지러움과 구토ㆍ두통ㆍ피부발진 등 이상 증상이 생기는 질환이다. 심하면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의식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이 질환은 휴대폰 보급이 다른 곳보다 빨랐던 북유럽에서 많이 발견된다. 스웨덴 정부는 EHS를 신체기능 장애로 인정할 정도다. 통계에 따르면 이 나라의 EHS 환자는 전인구의 3%인 25만명에서 최대 9%인 75만명이나 된다. EHS 환자들의 상당수는 전자파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대폰ㆍ무선전화기 등 전자기기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지역에 거주한다. 일부는 아예 이동주택에서 살며 증세가 심해지면 곧바로 안전지대로 이사하기도 한다. 전자파 난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스웨덴의 지방자치단체들이 특수 금속방호벽을 채용, 외부의 모든 전자파를 차단할 수 있는 EHS 환자 전용 주거구역 건설에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보면 휴대폰 전자파가 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반대 진영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EHS가 휴대폰 전자파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휴대폰 전자파와 EHS의 인과관계가 학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이들은 EHS를 '노시보(nocebo) 효과'에 따른 심리적 증상으로 본다. 노시보 효과는 의사의 말이 부정적 우려를 유발, 뚜렷한 의학적 근거 없이 환자에게 해를 입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사소한 증세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EHS라는 진단을 받으면 심리적 요인에 의해 전자파에 과민반응 한다는 것이다. 연세대 의과대학 의학공학교실 김덕원 교수팀이 지난해 생체전자파학회지에 게재한 연구결과에서도 EHS 환자들의 몸이 전자파에 특별히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증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는 이 같은 증상이 노시보 효과에 따른 것이라는 평론도 함께 게재돼 앞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논란 잠재울 국제프로젝트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입장도 휴대폰 전자파가 유해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물론 이것이 휴대폰 전자파의 무해성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현 단계에서 유ㆍ무해 여부를 확언할 수 없다는 의미다. 최근 영국과 호주ㆍ프랑스 정부가 청소년 휴대폰 사용 자제 권고안을 내놓은 것이나 각국이 전자파의 인체 흡수율 기준을 마련하고 규제하는 등 휴대폰 전자파의 위험성에 대비한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되는 원인으로 연구의 빈약한 표본 숫자와 방법론적 편향성을 꼽는다. 그간의 연구들 대다수가 수십, 수백명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한 단기 실험의 결과물이거나 조사기법에 허점이 많아 상대 진영에서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기존 휴대폰 전자파 연구 중 최대 규모, 최장 기간을 자랑했던 '인터폰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이 연구에서는 2000년부터 5년여간 독일ㆍ영국ㆍ일본 등 13개국 1만2,800명에게 휴대폰이 머리 및 목 부위의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리고 최근 휴대폰을 유달리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의 종양 발생률이 일반인보다 50%나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아동의 연구대상 제외, 자기공명영상(MRI)에 따른 암 발견율 상승 같은 변수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학계는 인터폰 프로젝트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 WHO의 두 번째 국제 협력연구 프로젝트인 '코스모스(COSMOS)'가 수십년 동안 이어진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본격화된 코스모스의 연구 대상은 25만명에 이르는 유럽인으로 영국ㆍ스웨덴ㆍ덴마크ㆍ네덜란드ㆍ핀란드 등 5개국 연구팀이 전자파와 인체, 특히 뇌종양 발병과의 상관관계를 다각도로 살필 계획이다. 연구 기간도 20~30년으로 지금까지 시행된 어떤 연구보다 규모가 크다. 연구팀은 특히 과거 연구에서 드러난 한계를 세세하게 파악해 편향성과 표본 부족 논란에서 벗어난다는 복안이다. 전문가들은 코스모스 프로젝트의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기 시작하는 오는 2029년께 휴대폰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할 신뢰도 높은 데이터들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스모스 프로젝트의 영국 책임자인 런던 임페리얼칼리지의 미레유 톨레다노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은 휴대폰 전자파의 유해성 또는 무해성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톨레다노 교수는 이어 "안전성이 확인되면 편안하게 휴대폰을 쓰면 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휴대폰의 안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자료들을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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