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까다로워 2월까지 집행 1%뿐정부가 실직을 당했거나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도입한 가계안정 및 생계비지원 제도가 시중은행과 다름없는 까다로운 대출조건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2월말 현재 실업자가 110만명을 육박, 수혜 대상자가 급증하는 실정이지만 실직자 가계안정자금의 경우 2월 기준 총4,700억원의 예산 중 불과 1%(51억원) 남짓 집행돼 근로자들을 위해 마련한 지원책이 '그림의 떡'으로 전락하고 있다.
인천 소재 중소기업체에 근무하다 지난해 12월 실직한 김모(36ㆍ남)씨는 정부가 저소득 실직자들에게 가계안정자금을 대출해 준다는 사실을 알고 다음날 바로 노동부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갔다.
그러나 김씨는 "재산세 납부실적이 있거나 소득이 500만원 이상인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는 공단직원의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 평생 다른 사람에게 보증을 서 본적이 없고 서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출조건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제조 업체에서 9년 동안 근무하다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이모(41ㆍ남)씨도 만성질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치료비가 적지 않게 들어가는 데다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여유자금이 필요해 공단을 찾았지만 보증인을 구하지 못해 받아놓은 서류를 1개월째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다.
이씨는 "보증인을 구할 수 없어 신용보증회사를 찾아가 방법을 찾아 봤지만 "경제여건이 악화돼 일정한 소득이 없으면 보증을 해줄 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 대출을 받는 것을 포기했다"면서 "실직한 사람들에게 누가 보증을 서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봉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에게 500만원까지 연리 6.5%로 대출해주는 체임근로자 생계비지원제나 사업주를 대상으로 20억원까지 빌려주는 '체임업주 대출지원제' 역시 까다로운 심사조건 때문에 제도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업주가 대출할 경우 부동산 등 담보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월급마저 제대로 주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담보로 맡길만한 부동산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
이처럼 실직자나 체임근로자의 대출문턱이 바늘구멍처럼 좁은 것은 근로복지공단이 대출을 대행해 주는 금융기관의 여신규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돈을 내주는 곳은 은행인데다가 현실적으로 보증 없이는 자금을 대출해줄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 근로복지공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단측의 한 관계자는 "실직ㆍ체임 근로자들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 같은 조건이 없다면 기금운용의 부실은 불을 보듯 뻔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동부는 지난해 3월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동부문 국정개혁과제로 저소득 노동자나 실직자들이 보증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신용보증지원제'를 2001년부터 도입한다고 보고했으나 아직 관련법이 마련되지 않아 표류하고 있다.
공단측의 한 관계자는 "올 들어서도 정부는 근로자신용보증지원제를 임시ㆍ일용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까지 확대, 7월부터 실시한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관련법이 마련되지 않아 실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박상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