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구조조정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일본 중견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을 본격적으로 접수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나타날 경기회생 이후 한국시장에 대한 공략속도를 높이기 위한 준비가 산업계 저변부터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부산 소재 코스닥상장사로 관이음쇠(피팅) 전문기업인 태광은 반도체장비 자회사인 태광SCT를 일본의 정밀밸브 업체 후지킨에 넘기기로 하고 지분매각 규모에 대해 협의를 벌이고 있다. 태광SCT는 국내 반도체용 배관 및 밸브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매출 300억원대의 흑자기업으로 100% 수입에 의존해온 반도체 및 액정표시장치(LCD) 가스라인용 밸브 및 피팅 국산화에 성공한 회사다. 일본의 대형 밸브 업체인 후지킨은 태광SCT를 연내에 완전 자회사화하고 이를 발판으로 오는 2012년 한국시장에서 120억엔의 매출을 올릴 계획으로 전해졌다.
금융ㆍ사무기기 업체인 청호컴넷도 급격한 원ㆍ엔 환율상승에 따른 경영난 타개를 위해 사무자동화기기 판매 자회사인 청호오에이시스 지분 모두를 일본 기업에 넘긴다.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한 한국 내 직접판매의 거점으로 청호오에이시스에 눈독을 들여온 일본 측 파트너사 교세라미타가 지분을 모두 사들이기로 했다. 이밖에 LED제조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 받고 있는 나리지온도 일본 중견 전자업체인 고덴시의 대표이사와 한국 고덴시의 손에 들어갔다. 지난 2007년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리지온의 최대주주였던 고덴시는 위기에서 벗어난 나리지온을 재인수함으로써 LED칩 생산부터 기존의 패키지(PKG) 및 시스템 사업을 잇는 수직계열화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최근 일본 중견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들을 잇달아 집어삼키는 것은 경기회생 이후 아시아 및 한국시장에 적극 진출하려는 일본 기업들의 구미에 맞아떨어지는 매물이 경기침체 여파로 속출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엔고 덕에 적은 비용으로 국내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일본계 기업들은 국내 중소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더욱 적극적인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일본 기업의 이 같은 공격적인 행보는 외국 투자자금 유치와 국내 한계기업 생존이라는 긍정적 요인의 이면으로 국내 기술력 및 특허유출, 그에 따른 국가경쟁력 약화 등의 잠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적잖은 정부 지원을 받아온 중소기업들이 외국으로 넘어가는 데 따른 국민경제적 손실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은 “중요한 것은 기업매각이 전략적인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외적 여건에 떠밀려 준비 없이 기업이 외국으로 넘어간다면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