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60만 재일동포 오늘(한민족경제권이 떠오른다)

◎말로만 “재외국민”… 고국 실질지원 절실/민족학교 11곳… 자녀90% 일학교 다녀/신용조합 불실심화 일부는 파산위기/“동포사업등 도움 교민청 신설 추진을”지난 10월 일본 오사카(대판)의 이쿠노(생야)지역에서는 민단 이쿠노지부가 지역내 재일동포를 대상으로 주최한 바둑대회가 열렸다. 8시간에 걸친 대회를 마치고 어스름이 질 무렵, 대회장 단상에 주홍색 한복차림을 한 15명 가량의 중년 여인들이 올라섰다. 뒤이어 「정선 아리랑」등 10여곡의 민요들이 구성지게 흘러나왔고, 대회장 안팎에는 한바탕 춤사위가 벌어졌다. 오사카코리아 바둑협회 이쿠노지부의 문희원지부장(59)이 지역내 부인들을 대상으로 조직한 「메아리민요회」의 춤과 노래솜씨였다. 이렇게 2시간 가까이 흥을 돋군 뒤 뒤풀이때 마신 술로 얼굴이 불그레 상기된 문지부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분명한 것은 재일동포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위해 일본에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뒤에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얽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정부는 재일동포를 그저 외국에 살고 있는 「떠돌이한국인」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마음에 와닿는 본국정부의 애정이 필요합니다』 그의 얘기는 재일동포들이 본국정부에 대해 느끼고 바라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함축한다. 재일동포들은 자신들에게 「재일교포」라 부르는 것을 매우 꺼린다. 나그네라는 의미를 지닌 「교」라는 단어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다. 본국이 재일동포에 대해 「떠돌이」가 아닌, 어쩔수 없이 흩어져사는 민족의 일원으로 대할 때부터 이들의 가슴에 와닿는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일본에 사는 한민족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민단 중앙본부의 고위관계자는 『지난 94년부터 본국정부가 재일동포에 대한 대우를 「재외거류인」이 아닌 「재외국민」으로 전환했지만, 아직 실질적 대우와 지원면에서는 별로 변한게 없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조총련계교 150곳 넘어 그는 또 정부측이 재일동포에 대한 지원을 말로만 부르짖고 있다는 증거로 열악한 민족교육 수준을 들고 있다. 정부가 재일동포에 대해 애정이 있다면 가장 먼저 동포 3세들의 교육문제에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일동포들이 몇년째 민족교육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정부측의 반응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이 한국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불과 11곳에 불과하다. 민단이 운영하는 민족학교중 제대로 된 곳은 오사카(대판)의 백두학원과 금강학원, 교토한국학교, 도쿄(동경)한국학교 등 11곳이 전부다. 결국 재일동포 자녀의 90% 가까이는 일본 학교에 다닐 수 밖에 없는 실정으로 민족학교에 다니기 싫어서가 아니라, 다닐 학교가 없는 형편이다. 같은 한민족이면서도 조총련계 민족학교가 1백50개를 넘는 것과 비교하면 재일동포의 교육 여건이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 알 수 있다. 더욱이 고등학교 수준인 민족학교를 나왔다 쳐도 재일동포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전혀 없다. 대학이 없으니 재일동포들은 대학진학을 위해 일본계 학교를 다닐 수 밖에 없고, 3세.4세로 내려갈수록 민족교육 여건을 점점 더 낙후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민단 지도자들이 「민족대학」을 세우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것도 이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민족대학 설립에 청신호가 들리고 있기는 하다. 민단 오사카지부의 홍성인 단장은 『연·고대 등에게 일본에 분교를 설립해주도록 꾸준히 요청한 결과 긍정적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본국대학의 분교일지언정 대학 설립을 위한 첫발을 디딜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온 셈이다. 분교성격의 대학이라도 일단 설립되면, 한민족계의 정식 대학 설립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홍단장은 민족대학이 설립될 경우 일본 진출 한국기업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에 진출한 금융기관 뿐 아니라 기업 대부분이 재일동포를 직원으로 채용하길 바라고 있고, 따라서 민족대학 출신들은 진출기업의 스카웃 1호가 될 가능성이 가능성이 크기 때문. 이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져 가는 재일동포의 민족의식 고양에도 적지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채수동 나고야(명고옥) 총영사는 『재일동포와 본국간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교류를 넓혀가고, 이어 민족대학 설립까지 실현된다면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민족대학 설립이 일본내 한민족들이 20∼30년전부터 품어온 소망이었다면, 최근 본국정부가 서둘러 지원에 나서야 할 곳은 바로 한민족계 금융기관이다. 민단 고위관계자는 『우선 민단과 한신협(재일한국인신용조합협회)이 협조, 부실에 빠진 한민족계 금융기관 살리기에 나서겠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한국계 일부금융기관의 파산까지 배제할 수 없다』며 『이 경우 부실 금융기관의 처리를 놓고 한일 양국 정부간 마찰이 빚어질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일동포 금융인은 『재일동포계 신용조합중 3∼4개는 이미 유동성이 고갈되고 있다』며 본국정부가 외화대출 등을 통해 지원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기술부족 업종전환 포기 최근 재일동포 기업들이 적극 추진중인 사업구조의 다변화에도 측면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재일동포 기업인들이 최근 급격하게 쇠퇴기미를 보이는 빠찡꼬사업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와 중공업 등으로 다변화하려 한다지만, 자금과 기술 등의 면에서 부실한 게 엄연한 현실이다. 동경에서 빠찡꼬사업을 하고 있는 한 기업인은 『제조업에 진출하려 했지만 결국 단념하고 말았다. 돈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기술력이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본국의 기업인 뿐 아니라 재외국민들에게도 기술력과 자금 등에서의 구체적인 지원 시스템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재일동포의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방참정권과 지방공무원 채용의 국적조항 등에서 미약하나마 일본정부가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는 분명히 우리 정부의 끈질긴 노력이 숨어있는 게 틀림없다. 물적 지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연간 동포단체 지원비중 60% 이상을 재일동포에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동포에 대한 지원업무가 여전히 외무부와 교육부·문화체육부 등으로 분산돼 통일된 지원정책을 펴기가 현실적으로 힘든게 현실이다. 금융과 통상·사회·문화 등 동포업무만을 따로 통괄하는 가칭 교민청을 설치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런 점에서도 타당성을 지닌다. 일본내 한민족경제권을 한층 성장시키는 것은 정부의 통일된 정책 비전과 기구가 있고서야 가능하다는게 일본 현지 기업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민단 역할·힘 신장시켜야 중앙민단의 고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한국정부는 재일동포가 일본사회에 뿌리내리는데 중점을 둔 소극적 정책을 펴온게 사실』이라며 『이제부터라도 재일동포가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는 실질적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적극적 정책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일동포들이 실질적 힘을 모을 때 결국 한반도 통일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최근 조총련계열 인사들이 연간 몇천명씩 민단으로 전향하는 현실에 비추어, 민단의 힘이 조금만 더 신장된다면 머지않아 두 단체간의 통합도 바라볼 수 있다는 관측은 시사하는 바 크다. 민단과 조총련의 통합은 한반도 통일에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동경=김영기 기자> ◎인터뷰 홍성인 민단 오사카지부 단장/“백두학원 등 재정 열악 한글·문화교육 어려워 민족정체성 상실 우려 연·고대서 일분교 호의적 조만간 좋은결실 기대” 『한나라 국민에 대한 교육은 정부가 하는 것입니다. 재일동포도 똑같은 한국국적을 갖고 있는데 본국 정부는 왜 재일동포에 대한 교육 지원을 등한시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민단 오사카(대판)지부의 홍성인단장(63)은 60만 재일동포의 삶을 알고 이해하는데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듣는다. 토요일 하오 1시간 넘게 계속된 인터뷰에 쾌히 응한 홍단장은 재일동포의 열악한 민족교육 현실을 타개하는 데 본국정부의 지원이 시급함을 강조하는 데 인터뷰시간의 절반이상을 할애했다. ­재일동포의 민족의식이 갈수록 희박해져 가고 있다는 말이 있다. 민단 차원에서 강구중인 대책은. ▲이젠 재일동포도 5세까지 태어났다. 국민의식이 희박해지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게 아니냐. 하지만 본국정부의 책임도 적지않다.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들이 한국말도 제대로 못한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이 민족교육을 제대로 받도록 교육여건을 만드는 데 힘써 준 적이 있는가. ­오사카에는 백두와 금강학원 등 일본내에서는 가장 큰 민족교육 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교육 여건은 어떤가. ▲백두와 금강은 재일동포 민족교육의 대표적 산실이다. 하지만 재정측면에서 여전히 부실하다. 일례로 백두학원에 연간 2억엔, 금강학원에 1억5천만엔이 각각 소요된다. 본국정부가 재일동포 자녀들을 가르치는 사립학교에 대해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 ­민족대학 설립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문제때문에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한국문화를 재일동포 자녀들에게 알려주는 데도 민족대학 설립만큼 좋은게 없다. 최근 연세대와 고려대로부터 분교설립에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조만간 좋은 결실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기업과 재일동포 사회와의 관계는. ▲현재 일본내에는 약 70여개의 한국기업 주재상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 이들 기업의 상당수가 재일동포 자녀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전부가 일본대학을 나왔다. 앞으로 민족대학을 설립할 경우 한국기업의 인재 확보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 ­현재 재일동포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요약한다면. ▲일본경제가 전반적으로 불황에 빠지면서 한민족들도 타격을 받고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보다 큰 문제는 한민족들이 정체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심해질 것이다. 일부 동포들 사이에서는 통일이 되더라도 갈 곳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일본에서 삶의 뿌리를 내린 데다 민족의식도 사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부르짖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관련기사



김영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