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구광시 코오롱대표이사사장(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전문경영인)

◎“적자기업 살리는 뚝심경영”/업계 불황 불구 작년 116억 순익 창출/생산현장 20년경험 “실무밝은 사장님”/「뉴코오롱 2000비전」 매진 21C 세계적 생활소재기업 야망「뚝심의 사나이」 코오롱 사람들이 부르는 구광시 (주)코오롱사장의 애칭이다. 텁텁한 인상으로 친근한 아저씨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구사장은 『뚝심을 빼면 시체』라고 스스로 표현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강한 추진력의 소유자다. 신념이 서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직원들에게 『자신이 없으면 아예 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바꾸어 말해 소신이 있다면 불굴의 의지를 갖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구사장이 (주)코오롱 대구공장 생산부장을 하다 83년 본사 신규사업부장을 맡았을 때다. 신규사업부장을 맡은 지 6개월만에 당시 국내서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폴리에스터 부직포사업을 기안했다. 옷심지나 신발깔창 등에 사용되는 부직포는 당시만해도 국내에서는 전혀 생산경험이 없어 담당 임원조차 무모한 발상이라며 사업화에 반대했다. 그는 위험부담이 없지 않으나 사업성이 밝다는 확신을 갖고 최고경영진과 담판 끝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기술이전 문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도레이사를 설득해 해결했다. 그가 부직포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생산현장에서 잔뼈가 굵어면서 쌓은 해박한 지식과 안목에서 비롯됐다. 코오롱에서 29년을 일하는 동안 20년간 생산현장에서만 근무했다. 어떤 공장, 몇번 라인이 고장이 잘나고, 어떤 기계가 염색이 잘되는 지를 훤히 꿰뚫고 있다. 구사장은 섬유의 도시 대구에서 태어나 부산대섬유공학과를 졸업 원사·직물·염색가공 등 섬유부문의 전과정을 섭렵한 엔지니어출신 전문경영인이다. 엔지니어지만 경영수완도 남다르다. 그는 「좋은 회사란 이익을 내는 회사」라는 확고한 소신은 갖고 있다. 그래서 일까. 그가 맡은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 91년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는 코오롱세이렌 사장을 맡아 1년만에 흑자로 반전시켰다. 「마른걸레도 다시 짤」정도로 철저한 내핍경영이 뒤따랐다. 또 가격경쟁력 강화를 위해 생산·관리·영업 등 전부분에 걸친 비효율성을 낱낱히 파악, 이를 청산했다. 당시 그는 주력 생산품목인 차동차용 시트판매를 위해 자동차회사 구매담당자를 상대로 직접 세일즈에 나섰을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95년부터 (주)코오롱사장에 취임한 그는 전임사장이자 그룹부회장이던 이웅렬 그룹회장이 추진해온 경영혁신운동을 이어 받아 그 결실을 일궈냈다. 유례없는 섬유불황으로 화섬업체 대부분이 적자를 봤던 지난해 1백1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구사장은 당시 불필요한 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직원들의 지방공장 출장시 기숙사 숙식을 주문했고, 해외출장의 경우 휴일 출국, 주중 귀국 원칙을 정했다. 이처럼 부하직원들을 세차게 몰아치지만 특유의 리더쉽으로 직원들은 감싸안는다. 그는 한번 만나본 직원의 얼굴과 신상명세를 반드시 기억한다. 가끔 퇴근길에 남아 있는 직원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등을 다독거리는 자상함도 겸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뒷끝」이 없는 소탈한 성격이 좋다고 부하직원들은 말한다. 구사장은 요즘 21세기 코오롱의 청사진인 「뉴 코오롱 2000비젼」실현에 몰두하고 있다. 사업구조를 고부가·고수익형으로 전환하고, 자율·책임경영체계로 개편, 세계적 초우량 생활소재기업으로 육성하는 원대한 계획이다. 지난 63년 국내에 나이론을 선보여 의류혁명을 몰고온 코오롱이 어떻게 21세기를 맞을지 그의 어깨가 무겁다.<권구찬> □약력 ▲43년 대구생 ▲61년 대구상고 졸, 68년 부산대 섬유공학과 졸, 93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90년 1월 (주)코오롱 상무 ▲91년 2월 코오롱세이렌 대표이사 사장 ▲93년 10월 한국염공 대표이사 사장 ▲95년 11월 (주)코오롱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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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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