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호’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월드컵 본선 1라운드에서 그리스를 상대로 통쾌한 KO승을 거뒀다. 16강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경기력 면에서 2-0이라는 결과 이상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전격전에 혼이 빠진 그리스
허 감독은 박주영(AS 모나코)과 염기훈(수원)을 최전방에 세운 4-4-2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고 초반부터 강하게 상대를 몰아붙였다. 포백 라인의 양 측면에 나선 이영표(알힐랄)와 차두리(프라이부르크)까지 적극적으로 공세에 가담하며 그리스 수비진을 흔들었다.
전반 7분 프리킥 찬스에서 이정수(가시마)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은 후에도 공세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스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반 27분 박주영에게 노마크 찬스를 허용한 후에는 골키퍼와 수비수가 언쟁을 벌이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졸전으로 마음이 급해진 그리스는 후반 7분 중앙 수비수 루카스 빈트라가 센터 서클로 드리블해 나오다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볼을 빼앗기며 쐐기골을 허용하는 등 공수에 걸쳐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지피기지 백전불태
이영표(알힐랄)는 경기 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축구에서 신장보다 전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준 한판”이었다고 그리스전을 요약했다. 한국은 그리스의 제공권 장악을 봉쇄했고 스피드를 앞세워 그리스의 ‘황소걸음’을 농락했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스스로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약점을 공략하고 상대의 장점을 무기력하게 한 것이다.
박지성과 염기훈, 이청용은 전반부터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그리스 수비진을 뒤흔들었다. 그리스의 장기인 세트 피스 공격은 철저한 대인 방어로 차단했다. 그리스는 전반전에 여섯 차례의 코너킥 기회를 잡았지만 슈팅 연결은 한 차례에 그쳤다.
고기도 먹어본 이가 맛을 안다
월드컵 본선 같은 큰 무대에서 베테랑의 중요성은 그리스전을 통해 확인됐다.
그리스는 16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그리스 선수 모두에게 한국전은 월드컵 첫 무대였다.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가자 중심을 잡지 못했다. 유로 2004 우승 주역으로 팀의 중심인 요르고스 카라구니스, 콘스탄티노스 카추라니스(이상 파나티나이코스)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반면 2002 한일 월드컵의 영웅 박지성과 이영표는 공수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이영표는 앙헬로스 하리스테아스(뉘른베르크)를 완벽히 봉쇄하며 이정수의 선제골로 연결된 프리킥을 유도해냈다. 박지성은 상대 실수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하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한국 축구의 대들보’임을 확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