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도 다 갔다. 후회와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한해를 정리하는 시기다.
일본은 `호(虎)`라는 단어로 올해를 정리했다. 프로야구 센트럴리그에서 한신타이거스가 18년 만에 우승하며 선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한신타이거스의 우승을 경제의 길조로 받아들인다. 한신타이거스가 우승할 때마다 일본경제도 호황을 누린 탓이다. 올해의 단어로 호를 선택한 데는 한신타이거스가 종이호랑이에서 맹호로 변모했듯이 일본도 경제불황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최근 일본경제는 회복기미가 완연하다.
그러면 우리는 올해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희망적인 사건은 무엇이었나.
시작은 그래도 좋았다. 개혁을 부르짖는 새 정부가 출현했고 3040세대가 시대변화의 주역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또 인터넷 장관추천이라는 전에 없던 참신한 제도도 선보였고 곳곳에서 대화와 토론의 장이 마련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많은 게 달라지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혼돈과 반목에 얼룩져 있고 새 정부에 대한 찬가는 어느덧 불만으로 바뀌었다. 정치ㆍ경제ㆍ사회 어느 분야를 둘러봐도 미완의 과제와 상처뿐이다.
정치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혼탁하다. 누가 더 먹고 덜 받았다고 싸우고 있지만 개혁과는 무관한 일이다. 하얀 종이에 선이 하나든 둘이든 그것은 이미 백지가 아니다. 국민들에게는 추잡한 정치싸움으로만 비쳐질 뿐이다.
경제ㆍ사회에도 밝은 빛보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더 많았다. 사오정과 오륙도, 그리고 삼팔선과 이태백로 이어지는 신조어들은 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한다. 거시 경제지표가 좋아지고 있다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단순한 `숫자놀음`일 뿐이다.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고 잘못 말했다가는 욕먹기 십상이다.
물론 경제의 거울인 주식시장은 그나마 괜찮은 것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빛 좋은 개살구다. 외국인의 배만 불리는 이상현상이 일년 내내 지속됐다.
이런 자화상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반목의 `반(反)`이나 비애의 `비(悲)`, 미완의 `미(未)` 정도가 되지 않을까.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고 싸우니 `살(殺)`자도 어울려 보인다. 희망으로 시작됐던 우리의 2003년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문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모두 새해로 미뤄졌다는 것이다.
<이용택 증권부 차장 yt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