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명화를 그리던 화가들이 자신만의 붓질로 표현법을 만들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든다. 색색의 반원 혹은 사분원을 배열한 가브리엘 오로스코(48)의 신작 회화. 기하학적 문양으로 이뤄진 추상화인데 색깔 도형은 체스게임에서 ‘나이트(knight)’가 이동하는 방식처럼 직진 한 칸, 대각선 한 칸이라는 규칙에 따라 배치됐다. 우연한 발견과 만남이 고도의 감성과 규칙성으로 시각화된 것이다. 알고 보든 모르고 교감하든 시선을 끄는 힘과 시각적 만족감이 있는 작품들이다.
멕시코 출신 개념미술가인 오로스코의 한국 첫 개인전이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국내에는 덜 알려졌지만 1996년 뉴욕 휘트니비엔날레를 비롯해 2003년과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등으로 세계적 거장의 대열에 진입했고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이 전시는 바젤 쿤스트뮤지엄을 거쳐 현재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진행중이며 내년 초 런던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 막을 내릴 예정이다.
작가는 설치부터 조각, 회화까지 하나에 만족할 줄 모르는 재주꾼이다. 이번 한국 전시에는 사막에서 주워온 선인장 줄기부터 화산암까지 다양한 것들을 배열한 설치작품 ‘작업테이블 세부’를 비롯해 점토 조형물과 근작 회화까지 고루 선보였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감성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30일까지. (02)515-9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