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파리에서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실종 전 국제태권도연맹(ITF) 부총재 물망에 올랐던 것으로알려졌다.
김씨가 ITF 참여를 고려했다는 실종 전 행적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6일 최홍희 전 ITF 총재의 자서전 `태권도와 나'에 따르면 김씨는 1978년 여름뉴욕에서 최 전 총재와 최덕신 전 외무장관을 만나 연맹 참여를 타진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날 만남은 김씨가 장모 전 중령을 통해 "두 분을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서마련된 것으로 최 전 총재는 자서전에서 이 회동을 `민주운동모임'이라고 불렀다.
최 전 총재는 책에서 "그(김형욱)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덕신형을 향해 `선배님, 제가 국제태권도연맹의 어떤 직책을 가질 수 없겠습니까'라고 진지하게 물었다"고 썼다.
이미 최 전 총재와 최 전 외무장관은 미국으로 건너와 박 대통령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미국 정가를 뒤흔들어 놓고 박 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준 김씨를 오래 전부터눈여겨 보던 터였다.
김씨가 전재산을 민주운동(박정희 반대운동)에 기증하고 투신한다면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오명'을 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김씨를 합류시키기로 이미 뜻을 모으고 ITF 참여를 권유키로 했던 것이다.
김씨를 ITF에 합류시키려고 한 이유에는 그가 미국으로 가지고 온 돈이 재정난을 겪던 ITF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깔려 있었지만 김씨에게 있을지 모를생명의 위협에 대한 방어막을 제공하고자 했던 의도도 있었다.
최 전 총재는 이와 관련, "나는 김형욱을 국제태권도연맹의 부총재로 추대하여사회적 위신을 세워주고 필요하다면 신변보호를 위해 유능한 태권도 사범들을 추천하려고 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
최 전 총재는 김씨에게 "토론토에 있는 내 집에 와서 며칠간 쉬면서 조용히 이야기하자"고 제안했고 김씨는 수첩에 날짜까지 적으면서 "꼭 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약속했던 `토론토 회동'은 김씨의 연락이 끊기면서 무산되고말았다.
그후 최 전 총재가 김씨를 다시 만난 것은 이로부터 몇 달이 지난 뉴욕에서였다.
최 전 외무장관과 함께 장 전 중령의 집으로 찾아가 저녁식사를 했던 최 전 총재는아무런 예고도 없이 술 한 병을 들고 찾아온 김씨와 조우를 했다.
이때 두 사람은 다시 ITF 참여 문제를 논의키로 하고 약속을 정했지만 김씨의모습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최 전 총재는 자서전에서 "사실 약속대로만 됐다면 그는 대우를 받으면서 살 수있었는데 진실한 권유를 듣지 않다가 죽음을 당했다"며 김씨의 실종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서울=연합뉴스) 조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