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누가 김하늘에게 코미디 영화가 어울릴 줄 알았을까. 큰 소리 한 번만 질러도 굵은 눈물 뚝뚝 흘릴 것 같이 생긴 이 눈물의 여왕은 그러나 ‘동갑내기 과외하기’ 영화 한 편으로 관객을 완벽히 무장해제 시켰다. 그 뒤를 이은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그야말로 김하늘표 코믹 연기의 절정이었다. “희철씨의 아기를 가졌어요”라며 방 안을 데굴데굴 굴렀던 그녀를 그 누가 청순가련의 대명사로 기억하겠는가. 23일 개봉하는 영화 ‘청춘만화’은 그렇기에 김하늘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다. 전국 550만 관객을 동원한 전작 ‘동갑내기…’의 명콤비 권상우와의 재결합, 우스꽝스러운 영화 포스터에서부터 묻어나는 예의 그녀만의 코믹 이미지. 그러나 정작 영화는 코미디라는 포장지 속에 멜로의 감성을 든든히 깔고 있다. 김하늘 자신도 이 영화를 “재밌고 웃기는 멜로영화”라고 소개했다. “가볍게 웃기기만 했다면 선택할 이유가 없었을 거에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신선한 멜로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맡은 캐릭터가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그렇다 해도 그녀의 이번 선택은 많은 기대 만큼이나 궁금증을 자아낸다. 어찌 보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에 안주하는 안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녀가 대박을 터뜨렸던 건 언제나 코미디였으니까. “그렇게 제 연기방향에 구체적으로 머리를 쓰진 않아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가벼운 마음으로 할 뿐이죠. ‘동갑내기…’를 할 때도 처음부터 대단한 연기변신을 꾀한 건 아니었어요. 그 영화를 시작할 때, 이 만큼 대단한 결과가 날 줄은 아무도 몰랐잖아요.” 그녀는 영화에서 21살 여대생 진달래 역을 맡았다. 배우 지망생인 연극영화과 학생인 달래는 지환(권상우)와 초등학교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13년지기 친구. 지환과는 마주칠 때마다 티격태격 싸우기에 바쁘고, 영화 오디션을 볼 때면 심장이 쿵쾅거려 외웠던 대사도 까먹길 밥 먹듯 한다. “달래는 밝고 긍정적인 아이에요. 그리고 배려심이 참 많아요.” 실제로도 집에서 맏딸인 김하늘은 그런 달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고 말한다. “달래는 참 첫째다워요. 왜 부모님들이 그러시잖아요. 첫째는 딸이 좋다고…” 그 어느 때보다도 유쾌하고 발랄한 캐릭터를 연기한 그녀지만, 영화를 이야기하는 그녀의 표정을 자못 심각하다. “이 영화를 끝으로 더 이상 어린 역할을 할 수 없을 지도 몰라요.” 실제로 내년이면 김하늘도 서른이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녀는 걱정한다. “더 이상 나이로는 순수하기만 한 영화를 만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까지 스무살 역할을 할 순 없잖아요. 그래도 이번 작품에선 대학생 분위기가 많이 묻어나지 않나요?(웃음)” 돌이켜보면 김하늘은 ‘청춘만화’에서나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나 늘 21살이다. 그녀가 영화 ‘바이 준’으로 데뷔했을 때도 21살, 대학교 2학년때였다. 벌써 데뷔 8년차. 데뷔 때를 돌아보면 오히려 그 때가 지금보다 더 웃자란 것 같다. “어릴수록 더 나이든 척을 하고 싶잖아요. 그 때는 다들 3~4살씩 더 많게 봤어요. 지금보다 머리 스타일이나 옷도 차분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려지는 느낌이에요.” 영화 속 단짝 권상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오늘의 김하늘을 있게 해 준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명콤비를 이뤘던 권상우다. 권상우가 ‘동갑내기…’ 이후 ‘말죽거리 잔혹사’ ‘야수’ 등으로 화려한 변신을 계속했다면, 상대적으로 김하늘은 그리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왔다. “권상우씨와 저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다르죠. 남자와 여자의 차이 같기도 해요. 권상우씨는 할 수 있는 게 참 많아요. 화려한 액션도 있고, 표현하는 감정도 다양하고…. 저는 큰 변화는 없지만 꾸준히, 조금씩 나아가려는 스타일이에요.” 마냥 청춘스타일 것만 같은 김하늘이지만, 이제는 조금 더 먼 미래를 바라봐야 할 때가 왔다. 내년이면 서른. 데뷔 후 줄곧 주연만 맡으며 톱스타 자리를 놓지 않았던 그녀이기에 고민이 더 깊을 법도 하다. “근데 그거 아세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나이를 잘 몰라요.(웃음)” 아직 서른에 대한 고민은 없다. 영원히 주연을 맡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연기방향을 새롭게 다지는 것도, 아직은 정해놓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던진 질문은 ‘사랑과 우정 사이’였다. 영화 속 지환과 달래가 딱 그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사이. “남녀간에 우정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단 1초만에 딱 잘라서 “없다”는 대답이 나왔다. “종이 한 장 차이에요. 아무리 우정이라고 우겨도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는 게 남녀 사이 아닌가요?”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그녀의 대답대로라면 주위에 친구로 지내는 남자는 없단다. “우정을 믿지 않는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