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노장' 얀 오베 발트너(39.스웨덴)가 없었다면 한국 남자탁구의 `희망' 유승민(22.삼성생명)이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 쾌거를 이룰 수 있었을까.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는 건 발트너가 유승민의 우승 길목에서 만날 뻔 했던 `지뢰'들을 차례로 제거해줬기 때문이다.
서브와 스매싱, 드라이브 등 어떤 것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최상의 기술을 과시하며 '89.'97세계선수권대회와 `92바르셀로나올림픽을 제패하며 80-90년대를 풍미했던 발트너는 나이 탓에 최근 국제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해 한물간 선수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선 `녹색테이블의 여우'라는 별명에 걸맞게 불어난 몸매에도불구하고 예리한 서브와 구석 구석을 찌르는 백핸드 푸싱, 노련한 파워 드라이브를앞세워 강호들의 `저격수' 역할을 했다.
16강에서 올해 초까지 세계 1인자로 군림했던 최강의 공격수 마린(중국.세계 2위)을 4-1로 눌렀고 8강에선 지난해 세계랭킹 1위에 잠깐 올랐던 티모 볼(독일.세계11위)마저 역시 4-1로 제압했다.
`이면타법'을 구사하는 마린은 유승민이 지금까지 7번 싸워 한번도 이기지 못했던 강적이고 까다로운 구질을 가진 볼과의 상대전적도 3전 전패로 절대적 열세여서발트너가 이들을 꺾어주지 않았다면 유승민의 결승행은 장담하기 어려웠던 것.
유승민은 다행히 2001스웨덴오픈 32강에서 4-2로 눌렀던 발트너를 맞아 시종 우세한 공격을 펼친 끝에 결승행 티켓을 따냈고 여세를 몰아 상대전적 6전전패의 열세를 딛고 결승 상대 왕하오(중국.세계 5위)마저 4-2로 돌려세워 감격적인 금메달의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유승민에게 발목을 잡혀 3-4위전으로 밀린뒤 왕리친(중국)에게 첫 세트를 따고도 1-4로 역전패해 메달 꿈을 접은 발트너는 "휴식을 취한 뒤 9월부터 훈련을 재개하겠다. 내년 세계선수권(중국 상하이)에 출전하겠다"며 재도전의지를 밝혔다.
만리장성을 허물고 세계 정상에 오른 유승민은 "발트너가 마린과 볼을 모두 잡아주는 등 행운도 따라줬다"며 발트너가 우승의 숨은 도우미임을 인정했다.
/(아테네=연합뉴스) 특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