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끝났다고 환자의 상태가 바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체력과 건강을 회복하려면 한참 걸린다. 때로는 재활치료도 필요하다. 뇌경색으로 손발 움직임이 부자유스럽거나 인대파열 등으로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재활훈련 과정은 몹시 고통스럽다. 신경마비나 장기간 사용하지 않아서 퇴화된 기능을 되살려야 하는 것이니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지금 세계경제가 딱 그런 환자의 모습이다. 신용경색으로 마비됐던 세계 금융시장은 주요국이 총동원된 대형 수술과 고단위 처방약 투입으로 겨우 고비를 넘겼다.
세계경제 혹독한 구조조정 불가피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 예금전액 보장, 주요국 동시 금리인하, 은행 간 대출 정부 지급보증, 은행 부분국유화, 달러 유동성 무제한 공급 등 전례 없는 특단의 조치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혈관이 완전히 뚫렸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위기의 진앙은 미국의 주택경기 침체인데 바닥 조짐은커녕 앞으로 2년간 25% 추가하락 전망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돈맥경색 증상이 언제든 재발해 재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비가 풀리더라도 고통스러운 재활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닥칠 실물경제 침체 말이다.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기관들은 혹독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일반기업과 가계도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실적악화와 감원바람이 불면서 실업자는 늘어나고 소비는 위축될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의 우리 경제 모습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 신호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지수,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 등 각종 지표는 몇 년 새 최악이다. 지난 9월 자동차판매는 15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GM 등 자동차 빅3의 파산설이 나돌고 있다.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인력 15%를 감축하기로 했다. ‘미국경제가 심장마비를 겪은 뒤 빈털터리가 됐다’는 워런 버핏의 말이 실감난다. 이런 판에 구조조정 한파까지 덮치면 상황이 어떨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미국의 경기침체는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경제의 침체는 곧 세계경제의 악화를 의미한다. 유럽은 이미 기울었고 세계최강이라는 일본 제조업조차 수출둔화 등으로 고전하면서 명예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태세다. 중국이 대안으로 꼽히지만 세계경제가 망가지는데 중국만 온전할 리 없다. 게다가 중국도 부동산과 주가폭락 등 경착륙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자칫 세계경제가 대공황 이후 유례없는 혹한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부악재라도 해소토록 해야
문제는 우리 경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외부 악재에 더 민감하다. 금융위기 폭풍은 이미 우리 경제를 매섭게 때려대고 있다. 생산ㆍ소비ㆍ투자 등 경제지표는 한결같이 악화일로다.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출마저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다. 환율급등과 외화유동성 문제는 살얼음판 같다. 외부요인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투자위축과 고용악화, 가계부채 급증 및 금리상승, 중소기업 및 건설업체 줄도산 위기와 금융부실 우려 등 악재가 숱하다.
정부는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을 5%로 예상하지만 국내외 기관들의 전망치는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3% 초반, 잘해야 중반이다. 지금도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판인데 앞으로 살기가 훨씬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이야기다. 난국타개를 위해서는 모두가 비상한 각오로 나서야 한다.
정부는 위기관리체제를 강화해 시장상황에 따라 기민한 대응에 나서는 한편 규제개혁에 속도를 붙여야 한다. 정치권은 소모적 정쟁을 삼가고 민생과 경제 법안을 제때 처리해 정책추진을 뒷받침해야 한다. 기업은 투자확대 등 적극적 경영활동을, 노동계는 강경 노동운동 자제와 생산성향상 등 상생의 노사관계에 나서야 한다. 내부 악재만이라도 걷어내는 노력을 해야 경제혹한을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