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승자의 재앙

심상정 <국회의원·민주노동당 수석부대표>

기업들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우는 전략을 ‘레드오션 전략(red ocean strategy)’이라 한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말이다. 어떤 기업이 이 전략을 선택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까. 그 기업만이 ‘경쟁제일주의’을 선택한다면 그 기업은 경쟁전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들이 '경쟁제일주의’를 선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 기업 가운데 경쟁우위를 확보한 기업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 우위를 확보한 기업도 경쟁전에서 너무 심하게 피를 흘려 결국 몰락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승자의 재앙(Winner's Curse)이라고 말한다. 경쟁제일주의의 결과는 현실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예컨대 지난 97년의 동아시아 경제위기는 이 지역 국가들이 모두 (수출)경쟁제일주의를 선택한 결과였다. 80년대 중반 이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을 모범삼아 수출주도 성장정책을 추구했다. 중국도 90년대부터 역시 수출주도 성장정책에 뛰어들었다. 이리하여 수출시장을 둘러싼 경쟁전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세계시장은 곧 상품들로 범람했다. 여러 기업이 쓰러졌고 국가는 외환부족 사태로 내몰렸으며 그 이후의 과정은 우리가 경험한 그대로 재앙이었다. 이와 같이 경쟁은 참가자들을 모두 재앙으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에 경쟁제일주의의 우월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기업들이 앞 다퉈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을 강조하고 있다. 경쟁시장에서 혈투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보다는 잠재력을 지닌 비경쟁시장에 눈을 돌리자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 아이디어이다. 경쟁제일주의의 위험이 오죽했으면 ‘블루오션’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안쓰럽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경쟁제일주의에 지배당하고 있다. 교육은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간주된다. 서울대학교 총장은 경쟁을 통해 학생을 ‘솎아내는’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금융기관들은 부자 마케팅으로 상대방을 침몰시키기 위해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는 여전히 국가경쟁력을 최고의 가치로 외쳐댄다. 그러나 모두 죽자 살자 경쟁에 나선 바로 그 다음 순간에 이기고도 모두 지는 사태가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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