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넥스텔사 김성현 사장(창업스토리)

◎“칠전팔기” 인터넷서 결실/유망 FRP사업 하청사 잘못에 도산/가정도 파괴… 자살 실패후 새인생 결심/국내 최초 인터넷 서비스업체 설립/첫해엔 매출 전무… 3년만에 100억 기대김성현 사장(49)은 지난해 정보통신부로부터 유망중소정보통신기업으로 선정된 (주)넥스텔을 창업한 기업인이다. 넥스텔은 지난 94년 6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설립된 인터넷 전문 서비스업체. 설립 첫 해인 94년에는 전무하던 매출이 이듬해 9천8백만원, 지난해에는 18억원으로 늘어나고 올해는 1백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의 김사장 이미지는 여느 첨단정보통신기업의 경영자들과는 영 딴판이다. 외모도 첨단업종을 떠올릴 수 있을만큼 현대적이지도 않고 대학도 거리가 먼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김사장이 어떻게 종합 인터넷 업체를 경영할 수 있을지. 해답은 그의 인생역정에 숨겨져 있다. 김사장은 행정고시와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고시생이었다. 그런데 24살 젊은이에게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엄명이 떨어졌다. 『매형과 함께 건자재용 강화플라스틱인 FRP제조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사장은 어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지난 70년 서울 신정동 칼산부근에 회사를 차리고 공장장으로 일을 했다. 현재 매형이 사장으로 있는 동양FRP는 목동 아파트가 들어서며 설립초기부터 수백억원의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매형과 틈이 벌어지기 시작해 김사장은 회사문을 나서게 된다. 곧바로 달려간 곳이 사우디아라비아. 그는 그곳에서 영국 파이버글라스 제조회사 기술부장으로 일하며 사업자금을 모았다. 78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사장은 FRP제조회사인 대양기업을 창업하고 오뚜기처럼 일어섰다. 연간 매출이 1백억원에 달할 정도로 잘 나가던 그에게 또 시련이 닥친다. 지난 85년 독립기념관 건설에 납품업체로 선정됐으나, 하청을 준 기업의 잘못으로 화재가 발생해 흑자를 내고서도 회사문을 닫아야했다. 김사장은 인생을 다시 설계하기로 하고 문둥이 촌인 소록도를 찾았다. 종교에 귀의하고 싶어서 였다. 그는 사업실패로 가정까지 파괴당해 한때 괴로움을 참지못하고 자살도 결행했었다. 술에 만취해 승용차를 타고 양수리 강변에 뛰어들었으나 자살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때마침 그곳에서 대형크레인이 대형사고트럭을 끌어내고 대기중이었다. 굴곡이 심한 길이라 김사장이 못 보았던 것이다. 『유서까지 써 놓았었는데 허탈하기도 하고...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저는 그때부터 인생을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습니다』 김사장은 다시 외국행을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FRP기술을 더 배우기 위해 국졸로 자신을 속이고 FRP제조회사인 (주)오오미네진에 3일만에 취직했다. 『새벽 4시에 출근하고 밤 11시에 퇴근하다보니 하루 4시간도 채 못잤습니다』그는 회사에서 우수사원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 6개월만에 신분을 들키고야 말았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온 그는 일본에서 FRP제조회사를 차리고 관련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돈도 벌만큼 벌었죠』 지난 91년 김사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공장을 하며 고국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컨설팅회사의 도움을 받아 눈을 돌린 것이 지금의 사업이다. 인터넷 문외한인 그가 사업에 성공한 것은 직원들의 실력보다는 의지를 키워주는 독특한 경영방식에 있다. 넥스텔연구소는 포항공대출신을 주축이다. 김사장은 세계를 거미줄같이 엮어놓은 인터넷에서 금맥을 캐고 곧 중국으로 달려가 또다른 인생설계를 할 계획이다.<박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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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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