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6월 22일] <1729> 콘티넨털


1775년 6월22일, 필라델피아. 2차 대륙회의가 미뤘던 안건을 하나 통과시켰다. 대륙폐(the Continental) 발행안을 의결한 것이다. 채권 형식이었지만 실제로는 불태환지폐였던 대륙폐 발행안은 일찌감치 수량과 권종(액면금액)이 정해졌을 뿐 시간만 끌어오던 안건. 각주 대표의 의견 불일치 탓이다. 각기 주권을 행사하며 독자적인 화폐체계를 갖고 있던 13개 주 입장에서는 대륙폐 발행 자체가 성에 차지 않았다. '화폐주조권 상실'을 우려하며 서로 눈치를 살피던 대륙회의가 대륙폐 발행을 강행하게 된 계기는 벙커힐 전투. 2,400여명의 영국 정규군을 맞아 아메리카 민병대 1,500명이 저항했던 이 전투에서 대륙군은 패배했으나 적에게 두 배의 손실을 안겨주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보급과 지원이 충분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반성은 전쟁비용 충당을 위한 대륙폐 발행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발행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점. 1차분 200만달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연말에는 600만달러가 추가로 발행됐다. 결국 1779년까지는 2억4,155만달러어치의 콘티넨털이 뿌려졌다. 영국군도 위조지폐를 마구 찍어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과다하게 발행된 돈의 가치하락은 당연지사. 1 대1인 은(銀)과의 시중 교환가격이 168대1로 벌어진 적도 있다. 오죽하면 '콘티넬털처럼 가치 없는(not worth a Worth)'이라는 말이 관용적 표현수단으로 자리잡았을까. 질의 안 좋은 화폐의 대명사격인 콘티넨털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다. 오늘날의 달러와 구조적으로 다를 게 없다. 불태환지폐라는 점이 그렇고 마구 발행된다는 점이 그렇다. 콘티넨털이 반란까지 야기하는 등 무수한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 역시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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