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경제의 주요 화두는 혁신이다. 모두가 혁신을 외치지만 혁신을 미리 계획한다거나 강요한다고 해서 달성할 수는 없다. 혁신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난 2013년, 막 한국에 부임했을 때 마침 '미래를 보여주다(displaying future)' 라는 타이틀로 심포지엄을 주최하게 됐다. 과학자·산업디자이너·건축가·예술가 등이 모여 기술과 미래의 변화를 각자의 관점을 바탕으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머크는 답안을 제시하기보다 참가자들이 머릿속에만 담아뒀던 상상력을 끄집어내도록 돕는 데 주력했다.
이 같은 방침은 전 세계 주요 연구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각 연구소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진들이 유기 전자 등 미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미래 기술은 현재로서는 '세계를 바꿀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될 뿐, 미래 시장이 정확히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현재 각국에서 디스플레이·태양광, 차세대 트랜지스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만 연구 주제를 이처럼 '확실한 후보'로만 좁힐 경우 기존의 주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분야에는 접근하기 어렵다. 연구원이나 연구 자금을 이미 알려진 주제에만 할당하게 되면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여느 기업들처럼 머크도 내부적으로 혁신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살아 있는 혁신(Merck, Living Innovation)'이라는 머크의 슬로건에도 이 같은 뜻이 담겨 있다.
머크의 대표적인 혁신 프로그램으로는 사내 아이디어 경연대회인 '이노스파이어(innospire)'를 꼽을 수 있다. 이노스파이어는 직원들이 신제품이나 다양한 콘셉트에 대해 제안하고 실제 비즈니스에 반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2009년부터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혁신 잠재력을 최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서로 다른 부서 간, 조직 간의 협업을 장려한다는 점이다. 또 사업 부문 구분 없이 다양한 부문의 직원들이 참여한다.
이노스파이어를 통해 선정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백내장 수술 환자의 시력 회복 프로젝트다. 수백만명의 백내장 환자들이 수술 후 통증 없이 시력을 되찾도록 돕기 위해 기능성 소재를 이용, 굴절률을 조절할 수 있는 인공수정체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이용하면 백내장 수술 후 안경을 쓸 필요가 없어진다. 이는 우리가 더 나은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기업이 이 같은 노력을 통해 단순히 수익만 얻는 것이 아니라 각국, 각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혁신을 위한 환경 조성은 국가나 회사를 막론하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작지만 다양한 노력이 결국 창조경제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