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10일] 금인칙서


1356년 1월10일 신성로마제국 뉘른베르크. 제국의회에 등단한 카를 4세가 23개 법조문을 공표한다. 골자는 권력구조. 황제를 선출하는 선제후(選帝侯)를 확정하고 화폐와 세금에 관한 제후들의 권리를 내용으로 담았다. 카를 4세가 10월 7개 조문을 더해 황제의 금인을 찍어 발표했기에 금인칙서(Goldene Bulle) 또는 황금문서라고 불린 이 법률은 나폴레옹에게 멸망(1806년)당하기까지 신성로마제국의 기본법으로 작동했다. 금인칙서는 독일 지역 내 유력 제후들간 타협의 소산. 제후로서 독립을 누리면서도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그럴듯한 간판도 유지하겠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다. 기대대로 금인칙서는 제국의 황제에게 영국이나 프랑스의 왕과 비견할 수 있는 명예를 안겨줬다. 제후들도 실익을 챙겼다. 대교구의 성직자 3명과 제후 4명으로 구성된 선제후가 다스리는 봉토나 공국은 독자적인 재판권ㆍ화폐주조ㆍ광산개발ㆍ소금생산ㆍ징세권을 인정받았다. 선제후에 대한 항거는 대역죄로 간주됐다. 금인칙서로 정치권의 기득권은 유지됐지만 근대국가 독일의 출범은 늦어졌다. 경제도 손실을 입었다. 제후들이 세금을 늘리고 화폐를 남발한 탓이다. 조세부담이 가중되고 물가가 뛰는 상황에서 자본과 시민계급의 형성도 늦어졌다. 상인과 도시의 연합체로 12~13세기 북유럽의 상권을 좌우했으나 주교역품인 청어의 서식지 이동과 네덜란드의 발흥에 곤란을 겪던 한자동맹도 제후권 강화에 밀려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황금문서의 경제효과는 이름과 반대였던 셈이다. 지역할거주의에 근거한 정치적 이해타산이 경제의 밑바탕을 갉아먹는 구조는 먼 옛날 남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 선거의 단골 재료인 지역감정이 또다시 춤추고 경제는 얼마나 더 망가질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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