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20일] 오나시스


3,207척. 그리스의 선박 보유량이다. 세계 1위. 톤수(1억6,234만톤)로도 세계 최고다. 경제규모로는 35위인 그리스가 일궈낸 해운 경쟁력의 바탕에 한 인물이 있다. ‘선박왕’ 오나시스(Aristotelis Sokratis Onassis). 오나시스는 굴곡을 겪었다. 1906년 1월20일 태어나 가업인 담배중개업을 배우던 중 하루 아침에 무일푼 난민의 처지로 떨어졌다. 그리스ㆍ터키 전쟁 탓이다. 열일곱살 오나시스의 선택은 아르헨티나행. 수중의 돈은 63달러가 전부였다. 전화교환수로 일하며 알게 된 사업정보를 밑천으로 돈을 모은 그는 그리스산 담배를 수입해 24세에 백만달러의 반열에 올랐다. 오나시스는 세계 대공황마저 기회로 삼았다. 중고선박 6척을 시세의 6%에 매입하고 1938년에는 세계 최초로 유조선을 사들인 그의 선단은 2차대전 중 군수물자를 수송하며 지폐다발을 챙기고 전후에 미국의 군수송선을 불하받는 덤도 챙겼다. 탈세혐의로 미국에 벌금 700만달러를 문 것도 이 무렵이다. 최대 대박은 원유에서 나왔다. 에너지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유운반 독점계약을 맺어 선박왕의 지위를 굳혔다. 여성편력으로도 유명하다.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와 동거 중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재혼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과도 염문을 뿌렸다.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석유운송선단 매입 비용이 한국전쟁 군수물자 수송에서 나왔다. 백사장밖에 없던 현대조선(현대중공업)에 최초로 주문을 낸 해운업자도 오나시스의 처남인 리바노스다. 요즘도 그리스 해운업은 한국 조선업계의 최대 고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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