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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계에서 우리 작가들이 실력에 비해 상당히 저 평가돼 있어요. 한국 작가의 미적 감성 안에는 우리 전통의 감성이 있지만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조형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죠.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전통과의 단절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미술계 전문가들도 우리의 미적 감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하물며 일반인들은 더할 것이라는 판단에 조선시대 미술을 주제로 한 대중강연에 나서게 됐습니다.”
지난 4일 남산도서관에서 열린 고인돌 강좌 ‘흐름을 알면 저절로 보이는 조선시대 미술’을 맡은 윤철규(사진)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는 본격적인 강의 시작에 앞서 시민 대상 강의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이같이 말했다.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오는 10월 2일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열리는 이번 강좌는 금요일 저녁 7시 이른바 ‘불금(불타는 금요일)’의 여흥을 포기한 50여명의 시민들이 강의실을 찾았다. 회사를 마치고 도서관으로 달려온 직장인, 엄마와 함께 강의실을 찾은 20대 여성, 정년퇴직 후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60대 중년 남성, 도서관을 자주 찾는다는 주부, 논술준비를 위해 신청했다는 고등학생 등 다양한 계층이 모였다.
윤 대표는 이날 조선시대 회화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기본 용어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중국 문화권에 속한 탓에 신라시대 이후 독창적인 미술이론 즉 화론이 뚜렷하지 않아요. 화가에 대한 전기나 비평도 18세기에 등장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미술을 이해하려면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그는 중국에서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위진남북조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문인에 의해 그려진 산수화를 감상하는 법을 설명했다. “한나라가 멸망 후 들어선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혼탁한 현세를 벗어나기 위해 관료들이 산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이전까지 그들에게 산은 들짐승의 공격, 악령의 소굴 등 공포의 대상으로 지금 생각하는 안빈낙도, 무위자연 등을 즐길 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지요. 죽을 각오로 산을 선택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윤 대표는 위진남북조시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산수화가 당, 오대, 송을 거치면서 사실주의로 발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 귀족사회였던 당나라가 무너지면서 귀족의 몰락하게 되지요. 송나라에는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층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과거제도가 등장하면서 문인관료 사회로 발전하게 됩니다. 당시 문인들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논리적인 사고 세상을 판단해 사회 전체가 지적인 공감대가 형성이 됩니다. 대나무를 그릴 때에도 이치에 어긋나면 잘 못 그린 것으로 평가하지요. 비 올 때, 맑을 때, 새벽, 저녁 등에 따라 대나무도 다르게 그려야 한다는 것이 송대의 화풍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문인 중심의 화풍으로 산수화가 정착되면서 학식이 그림에 담겨있어야 좋은 그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송대의 화풍은 조선에 큰 영향을 끼쳐 문인의 학식과 품격이 그림에 담겨있다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 강의는 이어 스케일이 큰 산세를 표현했던 이곽파, 강한 흑백의 대비와 거친 필치가 특징인 절파 등 중국의 주요 화풍을 소개했다.
윤 대표는 “조선시대 회화를 이해하려면 중국의 역사를 지나칠 수가 없다”면서 “시대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작품을 감상하게 되면 우리 그림을 바라보는 안목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남산도서관에 이어 구로도서관에서도 5주간(9월7일~10월12일) 강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