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3일] <1464>노블레스 오블리주

1346년 8월3일, 프랑스 칼레가 영국에 떨어졌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승리에도 분노했다. 정예병력 3만4,000명이 시민 8,000여명을 누르는 데 11개월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소수의 웨일스 장궁병(長弓兵)으로 프랑스 기사단을 몰살시킨 크레시 전투의 분위기를 타고 도시락 까먹듯 접수하겠다던 칼레에서 고전했던 에드워드 3세는 경고했던 대로 주민 모두를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몰살의 위기에서 주민 대표들이 찾아와 매달렸다. ‘무고한 양민을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대신 우리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에드워드 3세는 ‘그렇다면 우선 저항에 가장 앞장섰던 여섯 명이 삭발하고 목에 밧줄을 맨 채 맨발로 찾아와 처형대에 오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누가 먼저 죽을지를 놓고 주민들이 고민에 빠졌을 때 가장 부유했던 피에르가 앞장섰다. 고위관료인 장 데르에 이어 지체 높은 자들이 서로 죽겠다고 나섰다. 이튿날 아침, 기나긴 농성으로 피골이 상접한 얼굴, 남루한 자루 옷을 걸친 차림으로 나선 주민대표 여섯 명을 보고 영국 왕의 마음이 움직였다. 프랑스 출신 왕비의 ‘살려달라’는 간청도 왕의 자비를 이끌어냈다. ‘모두 용서하노라.’ 감동적인 이야기는 조각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작품에 남아 있다. 전해져 내려오는 구술의 내용도 다양하다. 분명한 사실은 단 한가지. 칼레의 지도층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정신이 ‘고귀한 자일수록 먼저 책임을 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형이 됐다는 점이다. 부럽다. 칼레 주민들의 용기가 그렇고 영국왕의 관용이 그렇다. 지도층의 병역ㆍ세금회피가 자연스럽고 다수가 소수를 짓누르며 수백억원 재산의 기부마저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 땅의 풍토에서 보자니 참으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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