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재무장관들은 10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틀간의 회의를 마친 뒤 발표한 공동선언문에서 "환율을 수출촉진 도구로 쓰지 않고 보호주의를 배격한다는 기존의 약속을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G20은 세계 경제 둔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몇몇 국가 중앙은행들이 적절한 통화정책 조치를 취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유럽·일본 등의 양적완화는 경기부양이 목적일 뿐 수출증대를 위한 환율개입 정책이 아니라며 면죄부를 준 셈이다.
미국·영국·브라질 등을 제외하면 대다수 주요국이 자국 통화가치 절하를 유도하고 있는 마당에 상호 비난전을 벌여봐야 '누워서 침 뱉기'이고 오히려 환율전쟁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암묵적 공감이 작용했다는 것이 외신들의 지적이다. 회의 참석자들도 환율갈등을 진화하는 데 열을 올렸다. 최근 기준금리를 기습 인하한 캐나다의 조 올리버 재무장관은 "때로 통화완화가 환율조작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지금은 내수부양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피에르 카를로 파도안 이탈리아 재무장관도 "최근 유로화 하락은 경제 펀더멘털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티앙 노이어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 겸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 이사는 "최근 주요국의 환율변동은 정상범위"라며 "이번 회의에서 환율전쟁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미국도 당분간 달러화 강세를 용인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잭 루 미 재무장관은 최근 "달러 강세는 상대적으로 강한 미국 경제를 반영한 것"이라며 "양적완화로 다른 나라의 경제가 살아나면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외교적 수사와 달리 미국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는 이날 익명의 회의 참석자 발언을 인용해 루 장관이 주요 교역국에서 환율조작이 지속되는 신호가 있다며 수출촉진에 환율을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특히 루 장관은 독일에 대해 유로화 약세의 혜택만 향유하지 말고 재정을 더 풀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루 장관은 회의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계 경제는 회복세가 강한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고 유럽이 수요창출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며 "특히 독일과 일부 유럽 국가는 적자재정을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역대 최대치인 2,153억유로를 기록했다고 전일 밝혔다. 이는 중국의 1,767억유로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즉각 "글로벌 경제는 물론 유로존 성장 전망도 개선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미국의 압박에도 기존의 긴축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 환율전쟁은 물밑 신경전으로 마무리됐지만 앞으로 더 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올 들어 16개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스웨덴·폴란드 등도 금리 인하에 가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구나 덴마크 등 일부 국가는 외환시장 직접개입까지 단행했다.
여기에 미국마저 환율전쟁에 뛰어들 경우 글로벌 경제가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0일 미국 의회의 일부 공화·민주당 의원들은 중국·일본을 겨냥해 환율조작국에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발의했다. 물론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0년에도 비슷한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2011년 상원에서 폐기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 중소기업이나 노조 등의 불만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의 외환시장 직접개입이라는 돌발변수가 발생할 경우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샌드라 레빈 민주당 하원의원은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통화정책을 통해 환율하락을 유도한 나라는 빼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한 국가로만 한정했다"며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