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망 중립성 원칙 깨져… 세계 통신업체 파장 클듯

미국 정부 콘텐츠업체 망 이용료 차별화 허용


FCC, 망 사용시 트래픽 따라 '할증 요금 부과' 새 법안 마련

IPTV 등 신규 시장서 수익 창출


대형 통신사 최대 수혜 입지만 벤처는 고사 "제2페북 못나와"


미국 정부가 통신망 사업자들이 콘텐츠 서비스 업체들에 대해 인터넷망 이용료를 차별화해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콘텐츠 업체도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이용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으로 미국은 물론 한국 등 전세계 정보통신 업계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인터넷 발명 이후 지켜온 '망 중립성' 원칙이 거의 사문화되는 동시에 중소 콘텐츠 업체가 고사하면서 '제2의 페이스북' 탄생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통신사가 대량의 트래픽을 유발하는 콘텐츠 업체들에 대해 협상을 통해 할증요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법안을 마련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디즈니·구글·넷플릭스 등 콘텐츠 공급자가 비디오 등 대용량 데이터를 소비자에게 보내기 위해 컴캐스트·버라이존·타임워너 등 통신사의 고속 및 전용 라인을 쓰려면 트래픽에 따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SK텔레콤이나 KT가 카카오톡 음성통화나 삼성전자 스마트TV 서비스에 대해 망 사용료를 자율적으로 청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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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휠러 FCC 위원장이 주도한 이 방안은 24일부터 내부 논의를 거쳐 올해 말 위원회 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다. 당초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을 절대 가치로 추구하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방향전환을 시도한 것은 올 1월 미 연방 항소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미 법원은 정부가 '망 중립성'을 이유로 통신망 사업자의 요금제를 규제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약하다고 판결했다.

이 법안이 도입되면 당장 대형 통신사들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TV나 개방형 IPTV, 모바일 IPTV 등 신규 시장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글·애플 등 대형 콘텐츠 서비스 업체들도 비용부담은 커지지만 수수료 지불 여력이 있어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이미 최종 소비자들에게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하기 위해 '라스트 마일(Last mile, 가입자에게 들어가는 통신회선)'을 확보하고 있는 중간사업자에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문제는 할증요금을 낼 능력이 없는 소규모 벤처회사들이다. 아무리 좋은 사업 모델을 갖춰도 인터넷 속도가 느리면 소비자들이 외면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대형 콘텐츠 업체들은 신생 벤처가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더라도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라며 "제2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탄생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FCC는 이 법안이 도입돼도 '망 중립성' 자체는 훼손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 통신망을 공공재로 보고 모든 통신사업자가 콘텐츠 서비스 업체에 대해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FCC는 여러 보완책도 도입했다. 가령 통신 공급자가 콘텐츠 사업자에 차별화된 요금을 부과하려면 '상업적으로 합당한 이유'를 증명해야 하며 이를 FCC가 심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통신 사업자는 초고속 인터넷선의 가격조건과 모든 인터넷 트래픽의 처리방법을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해 컴캐스트처럼 인터넷 서비스 자회사를 갖고 있는 통신사는 자회사와 관련 계약 조건도 공개해야 한다. 또 통신사 마음대로 트래픽을 차단하거나 차별하지 못하도록 했다. 휠러 위원장은 "똑같은 룰이 모든 인터넷 콘텐츠에 적용되기 때문에 '망 중립성' 원칙을 바꾼 게 아니다"라며 "자유로운 인터넷 이용 원칙과 법원 판결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수십년간 지켜온 '망 중립성' 원칙이 무너졌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비트토렌트의 에릭 클린커 최고경영자(CEO)는 "과학 기술자와 기업가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더 빠른 인터넷 라인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바로 명확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소비자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공공지식'의 마이클 바인버그 회장은 "새 기준은 인터넷 혁신 기업에 진입비용을 부과하고 있다"며 "통신사의 할증요금은 결국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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