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지분분산 모범기업이 먹잇감 "아이러니"

기업 5곳중 1곳 "경영권 공격 불안감 느껴"<br>재계 방어책요구에 정부 "가능성 적어" 뒷짐


지분구조가 잘 분산된 모범적인 기업이 기업사냥꾼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KT&G의 얘기다. 이렇다 할 대표주주가 없는 KT&G는 정부나 시민단체 입장에서 보면 칭찬해줄 만하지만 해당 기업은 사업을 쪼개야 할 위기해 처해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내 축구대표팀이 포백수비를 계속 시험하고 있는 것은 그물망을 더 쳐 외국 경쟁국 팀의 킬러를 더 강력하게 막기 위한 것”이라며 “외국도 적대적 M&A 방지책을 다각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외국계 자본을 차별하는 국수주의적 발상인지 한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칸, 사실상 KT&G 청산 노려=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은 9일 김병주 전 칼라일그룹 아시아 회장이 주도하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KT&G 측과 MBO 방식으로 경영권 인수를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으나 KT&G측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아이칸 측이 보고 펀드가 제휴 제의를 거절하자 MBK파트너스와 손을 잡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MBK파트너스는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이를 종합하면 칼 아이칸 측의 KT&G의 지분인수 목적은 국내외 사모펀드와 제휴, 경영권을 인수한 뒤 상장폐지 및 우량자산 매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 연속성에는 관심조차 없기 때문에 투자수익 극대화를 위해 청산조차 불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전문가들은 아이칸 측이 외국계와 연대해 KT&G를 인수하더라도 상장폐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장폐지 요건을 위해 지분 80%(시가총액 8조원가량)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고 상장폐지 결정권은 증권선물거래소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국내 사모투자펀드(PEF)의 한 관계자는 “해외 십시일반으로 8조원을 조달하기는 어렵지 않다”며 “아이칸 같은 헤지펀드는 한국 여론에는 관심 없는 투기세력”이라고 말했다. ◇적대적 M&A 위협 증가=현재 M&A 위협에 대한 일선 기업의 위기감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상장기업 4개 중 1개(162개사)는 외국인 1인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코스피200 기업 중 경영권 불안을 느끼고 있는 기업은 5곳 가운데 1곳에 달한다. 삼성전자조차도 25~30%의 지분매입을 위해 260억달러만 확보하면 적대적 M&A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유수의 기업들 역시 사정권에 놓인 상황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정몽규 회장 등의 지분이 16.89%에 불과한 반면 외국인 지분율은 66.43%에 달한다.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SK도 최대주주 지분율은 14.49%에 불과하다. 최근 외국계의 적대적 M&A 논란이 불거졌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최대주주 지분율이 각각 17.69%, 20.53%에 그치고 있다. 특히 포스코ㆍKT 등 민영화 과정을 거친 공기업의 경우 정부의 지분분산 정책에 따라 더욱 취약한 지분구조를 갖고 있다. 국내 한 PEF의 대표는 “최근에는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에서 외환위기 때처럼 높은 수익률을 올리지 못한 상황”이라며 “삼성전자라도 M&A 가능성만 있다면 달려드는 게 해외 헤지펀드의 생리”라고 말했다. ◇정부-재계 극명한 시각차=재계에서는 현재 ▦황금주제도나 차등의결권 ▦독약처방(poison pill) 증권 발행 ▦백기사(우호세력) 활성화를 위해 MBO에 세제ㆍ금융 지원 ▦대기업의 PEF 출자분 출총제 대상에서 제외 ▦5% 룰 보완 등을 주장하고 있다. 최소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조항 등 외국인에 불리한 조항이라도 개선해달라는 게 재계의 요구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외국 자본 등의 지배권 변경 시도에 대해 이사회의 판단으로 방어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나 시민단체 등은 이 같은 주장이 대주주의 편법 경영권 승계나 오너 지배체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태훈 KDI 연구위원은 “배당성향 증가나 시장 교란 등은 외국인 비중 증가와 무관하다”며 “특히 외국인들이 담합해 경영권을 위협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조사본부장은 “경영권 위협은 상장사 전체가 아니라 핵심 기업들에 집중되고 있다”며 “해당 기업의 위기감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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