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화·소유분산 우량이 되레 환경적응 발목/정부 대기업정책 약화… 「오너경영」 강화될듯기아그룹의 부도방지협약 선정은 국내 유일의 전문경영인 경영체제의 자동차전문그룹이 좌초됐다는 점에서 충격과 함께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아는 국내 유일의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회사이자 자동차 전문그룹, 소유분산이 잘된 기업이다. 기아의 이런 경영체제는 그동안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기업지배구조의 「모범답안」이었다. 그래서 기아에는 「재벌」이란 이름 대신 「국민의 기업」 「종업원이 주인인 회사」라는 별도의 이름이 붙어다녔다.
그러나 이렇게 이상적으로 여겨졌던, 적어도 우리사회가 추구해온 전문경영인 체제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기아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경제적 충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기아가 무너진 요인은 한보나 진로 등 다른 재벌그룹에서 보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구조적 불황이라는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부가 장려하는 업종전문화에 너무 충실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창업 이후 「자동차 전문그룹」을 지향해온 기아는 그동안 자동차외에는 이렇다할 다각화를 하지 못했다. 또 다각화를 하고자 해도 전문경영인 체제하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결정을 쉽사리 할 수도 없었다. 그 결과 현대, 대우 등 경쟁사들과 설비증설경쟁에 의한 공급과잉과 구조적 불황에 따른 판매부진이 직접적인 요인이 됐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결국 기아는 업종전문화·전문경영체제가 갖는 장점은 하나도 살리지 못한 채 단점만을 드러낸 채 무너진 것이다.
이에따라 이번 기아사태는 정부의 대기업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와 업종전문화제도를 골자로 하는 정부정책이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반면 「오너에 의한 강력한 리더십」을 주장해온 재계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기업 경영체제의 효율성을 판단할 수 있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며 『전문경영체제와 업종전문화의 맹목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너무 「정답」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발상전환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기아사태를 바라보는 재계의 시각이다.<민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