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목요일 아침에] '내 탓이요'와 경제反轉

이현우 논설위원


지난해 말 한 기업인으로부터 올해 경제에 대해 꽤 재미있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지만 결국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였다. 특별한 비방이라도 있나 싶어 귀를 세우자 “그동안 5자(字)로 끝나는 해(年) 치고 경제전망이 암울하지 않은 때가 없었으나 연말 성적표는 항상 좋았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정말 그랬나 알아보려다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우선 10~30년 전의 경제와 지금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합리성이 없는 것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토정비결식 말이 꼭 사실로 이뤄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 사실규명 작업 없이 그의 말을 그대로 믿기로 한 것이다.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 솟아난다 그렇다면 5자 해의 경제반전 현상의 비결은 뭘까. 아마도 ‘도전과 응전’, 그리고 ‘절망의 끝은 희망의 시작’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련이 클수록 극복 노력도 강해진다. 또 좌절과 절망이 깊어 더 이상 그렇게 할래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의욕과 희망이 싹트게 된다고 한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더 물러설 수 없는 궁지에 몰리면 이를 이겨내기 위해 각오를 새로 다지고 안간힘을 쓰다보니 예상치 않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 아닐까. 그래서 올해 경제여건이 암울하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희망을 갖게 한다. IMF 때보다 더 힘들다는 아우성은 우리 경제가 어떤 상황인지 긴 설명을 필요 없게 만든다. 지난 2년간 충분히 어려웠던 터에 급기야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할 정도로 큰 역경에 처했으니 이제 응전 의지를 불태우고 희망의 씨를 뿌릴 때가 된 셈이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이런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내 탓이오’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탓은 사회 갈등과 대립을 줄여 에너지를 결집시키며 이는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게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먼저 나왔다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다. 대통령은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나로서 비롯된 일이 너무 많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후 신년 기자회견에 이르기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회생에 전념하겠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대통령의 말에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많지만 (소득 2만달러 달성은)정부 힘만으로 할 수 없다며 기업인들이 도와달라고 말하기까지 한 것으로 보면 이번에는 다른 느낌이다. 그것이 재계 행사에서 한 말이어서 의전적 수사일 수도 있겠지만 기업에 도움을 청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통합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이런 변화를 전략적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 그게 전략적이든 근본적 변화든 시비 걸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변화가 재계를 비롯, 각계의 내 탓과 분발을 끌어내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재계는 ‘경제회생, 기업이 앞장서겠다’는 슬로건 아래 투자 및 고용확대 등 공격경영으로 전환했다. 어디 기업뿐인가. 여야 정치권은 대타협과 무(無)정쟁을 내세웠고 각계 원로들도 일자리 만들기와 새 공동체 건설을 제안하며 갈등해소에 나섰다. 국정목표가 경제 살리기로 모아지자 한번 해보자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속도가 붙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정부는 경제상황에 좀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빗나간 정부의 낙관일변도 전망과 대통령의 ‘대결적’ 상황 인식은 경제주체들에게 안심보다는 오히려 난관극복 의지와 능력이 과연 있는 것인가라는 불신을 초래,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금 모으기 행사에서 보듯 우리 국민은 지도자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방향을 옳게 설정해 앞장서면 기꺼이 따른다. 그게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저력이기도 하다. 희망을 갖고 응전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래서 5자 해의 경제반전을 사실로 만들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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